차기 윤석열 정부가 오는 5월10일 출범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친(親)재벌·반(反)노동·반서민 기조를 보여왔다. 대선후보 시절 제시한 공약집 340페이지 중 노동정책이 4페이지에 불과했으며 소상공인정책도 코로나19 손실보상금으로 일관하는 등 노동자와 중소상공인, 무주택자 등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정책 설계에는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이에 본지는 윤석열 정부 출범에 앞서 이들 경제적 약자들의 정책요구를 제시하는 ‘윤석열 정부에 바란다’ 기획을 싣고자 한다.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부동산공약으로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2022년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통합 추진 ▲양도소득세 개편·취득세 부담 완화 등을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부동산 약자인 무주택자 관련 공약은 뉴스테이(기업형 민간 임대주택) 확대 등 외에 크게 내놓은 게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당선 직후인 지난 달 28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3법이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법 폐지부터 축소까지 대안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대차3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전셋값 폭등과 전세 물량 품귀·이중가격 형성의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해당분과는 시장 상황과 입법 여건을 고려해 보완 방안을 단계별 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임대차3법은 2020년 7월 임대차시장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등을 핵심으로 도입된 법안(주택임대차보호법·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에게 1회에 걸쳐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제도이며 전월세상한제는 재계약 시 임대료를 5% 넘게 올릴 수 없게 한 제도다. 전월세신고제는 임대차 계약 후 30일 내 세부 정보를 신고토록 한 것이다.

한편 인수위는 지난 25일 임대차3법 폐지·축소가 아닌 개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도 임대차3법이 시행 2년도 안 된 법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볼 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폐지·축소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차3법 강화해야 ...계약갱신청구권 2회 이상 늘려야

지난 4월 19일 국회에서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영신 기자

세입자단체·임대차전문가들은 임대차3법을 폐지·축소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법 시행(2020년 7월) 전 1년(2019년 9월∼2020년 8월) 동안 평균 57.2%에 그쳤던 임대차 계약갱신율은 시행 3개월째인 2020년 10월에 66.1%까지, 시행 10개월째인 작년 5월에 77.7%까지 올랐다. 또 지난 해 11월 전국에서 신고된 갱신 계약은 10만231건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이 사용된 경우가 53.3%였으며 임대료 인상률 5% 이하인 경우가 76.3%를 차지했다.

배진규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임대차법 후퇴 NO! 강화 YES!' 기자회견에서 "어느 제도나 시행 초기에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고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지난 2월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으로 반전되며 법안이 효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차3법 폐지는 무책임하고 섣부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집값정상화시민행동은 “과도한 갱신 거부 허용 등 임대차3법의 허점과 예외 조항 때문에 피해를 입는 임차인들이 많아 이 법을 개선·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 전문가·세입자들이 임대차3법 중 가장 강화돼야 할 점으로 꼽은 것이 바로 계약갱신청구권이다.

서성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계약갱청구권을 1회에서 최소 2회 이상으로 확대해 임차인의 안정적인 거주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해 6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법무부의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제도에 관한 입법사례 분석 및 제도 도입 필요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임대차에 있어 갱신청구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횟수나 기간의 제한 없이 인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임대인의 실거주를 이유로 한 계약갱신 거부의 경우, 실거주 위반 시 손해배상액 규모가 적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의 강력한 보호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진 세입자114 변호사는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하고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다른 세입자를 받아 보증금을 수천만원씩 올려도 실거주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액은 1천만원 전후 수준이어서 실제로 ”그냥 내고 말지“ 하는 임대인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변호사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두터운 보호를 위해 손해배상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깡통전세·전세사기 심각..."당연한 권리인 보증금 보장 왜 안 되나"

참여연대 등은 지난 19일 국회 계단 앞에서 '임대차법 후퇴 NO! 강화 YES!'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참여연대
참여연대 등은 지난 19일 국회 계단 앞에서 '임대차법 후퇴 NO! 강화 YES!'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참여연대

또 전문가·세입자들은 차기 윤석열 정부가 임대차3법 폐지 논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깡통전세·전세사기 방지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청년단체) 위원장은 “아예 작정하고 보증금을 떼먹는 전세사기도 판을 치고 깡통전세도 기승을 부린다”며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는 사례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지 위원장은 “임대차 보증금은 세입자가 당연히 돌려받아야 되는 돈이며 그게 상식”이라며 “그러나 주택임대차시장의 보증금 보호제도는 노동시장의 체불임금 보장보다도 빈약하다”고 짚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임대보증금보증보험의 경우, 해당 주택에 압류·가압류 등이 없어야 하며 근저당권 설정 시 근저당권 금액이 주택 가격의 60%를 초과하면 안 되는 등 가입조건이 까다롭다. 세입자들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더라도 보증금 전체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을 해 주지는 못 한다.

지 위원장은 “집주인 사정이 어떻든간에 임대차 계약을 했으면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줄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을 해야 하며 만약 보증금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집주인이라면 임대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상식이 통하는 임대차시장을 만들기 위해 더 강력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전세가율 등 주택가격 대비 보증금 비율이 높을 경우,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보증금을 주택가격의 일정 수준 이하로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 소장에 따르면 지난해 2021년 아파트 전세가율은 전북(105.1%), 경북 (102.7%)에서는 100%가 넘었으며 충남(99.5%), 충북(98.9%) 등도 100%애 근접했다. 8개 시도에서 아파트 전세가율이 80% 이상이고 15개 시도에서 70% 이상이다.

지난 해 8월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깡통전세 방지를 위해 임대보증금을 주택 공시가격의 120%(실거래가의 80~90%) 이하로만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세 체납 등 주택 상황 '공개'...주택 품질 규제도 필요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김주현 기자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김주현 기자

한편 최은영 소장은 이러한 전세 사기·깡통전세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임대하려는 주택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된다고 했다.

최 소장은 “세입자가 본인이 들어가는 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들어가야 하지 않나”며 “국세 체납이나 선순위 채권 등이 얼마나 있는지 세입자가 미리 알아야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사기 등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전문가·세입자들은 정부가 주택 품질도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수 위원장은 “특히 다세대주택의 경우, 주거 품질이 굉장히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주택 품질 기준을 제정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곳들은 임대업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OECD 21개 가입국에 대해 임대주택의 품질에 대한 규제를 조사한 결과(출처 ‘2019년 OECD 부담가능한 주택과 사회주택에 대한 설문조사’) 21개국 대부분이 안전·건강·위생 등 임대주택의 최소 쾌적도 수준을 규정하고 있었다. 19개국에서는 중앙 및 연방정부가, 4개국에서는 지방 정부가 주택 품질을 추가 규제하고 있었다.

[시사경제신문=박영신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