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논설위원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게임중독은 질병인가. 이 해묵은 논제가 새 국면을 맞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열린 총회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구에 의해 질병으로 공식 규정된 것이다.

새 ICD안은 2022년부터 회원국에 효력이 발생한다. 권고사항인 만큼 그 반영 여부는 각국 정부에 달렸다. 우리 정부는 WHO의 권고를 받아들여 2025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시 게임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은 게임중독 관련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도 책정할 수 있게 된다.  

정신건강의학자나 뇌과학자들은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의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보면 도박이 알코올·마약 중독자와 유사하게 나타난다며 WHO의 결정을 반긴다.

그러나 의학적인 견지에서는 여전히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게임중독은 연구 근거와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아직 정식 질환으로 의학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게임중독이 전적으로 게임 때문인지 우울증 등 다른 공존질환 때문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WHO는 게임의 시간이나 빈도 등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모든 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게임중독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했다. 객관적인 근거가 미약하고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느김을 지울 수 없지만 그 근본 취지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게임업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도 질병코드 부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민의 문화생활권이 제한받고 게임산업의 성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단지 인간의 ‘놀이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일회성 소비상품이 아니다. 막강한 경제  파워로서의 산업적인 측면을 떠나 오랜 역사를 지닌 명실상부한 문화다.

문제는 중독이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온라인 게임중독 용의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김민영의 소설 ‘팔란티어’는 환상과 현실의 이중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지 소설 속 허구가 아니다. 언제든 우리 눈앞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최근엔 30대 남성이 PC방에서 닷새 동안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다 돌연사한 사건도 있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됨에 따라 게임산업의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업계가 입을 경제적 손실을 10조여 원으로 추정했다. ‘게임중독세’를 비롯한 각종 산업 규제가 생겨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게임업계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보건복지부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로서도 되돌아 볼 것은 되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게임의 사행성으로 인한 폐해는 간단없이 지적돼 왔다. 게임업계는 건전한 게임 생태계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왔는가. 국내 게임산업이 중독성 높은 MMORPG(다중접속 온라인 역할수행 게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중독성 높은 게임을 수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복지부는 6월 중 관계 부처와 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게임중독의 개념·기준 정립 등을 위한 논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문화부 또한 게임산업 관련부서로서 게임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로서는 이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책조율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민건강권도 챙기고 게임업계의 성장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게임중독의 질병화’ 방침이 정해진 이상 무작정 반대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최선의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