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사태 여파 에너지 수급 불안 가속
수입선 다변화 통한 에너지공급망 강화 필요 
‘원전 드라이브’ 속 재생에너지 ‘소외’ 우려 

경제안보가 화두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세계는 지금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마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갈수록 격화되는 안보 경쟁의 파고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식량·에너지·반도체·바이오 등 경제안보와 직결된 각 분야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특집을 꾸민다.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식량·에너지·안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식량·에너지·안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전쟁은 우리에게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촉발된 에너지 수급 불안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연가스 공급의 40%, 원유 공급의 약 27%를 러시아에 의존해온 유럽연합(EU)은 ‘에너지 공황’에 빠졌다. 

에너지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무역적자가 누적되고 물가가 치솟는 등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국으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3%에 이른다. 구조적으로 에너지 안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 위기다. 화석연료의 고갈을 우려하는 상황이지만 새 에너지원 개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에너지의 생산과 전환, 분배, 사용 전 과정를 아우르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전환,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정부는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에너지정책 5대 방향을 정했다.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의 재정립 ▲튼튼한 자원·에너지 안보 확립 ▲시장원리에 기반한 에너지 수요 효율화 및 시장구조 확립 ▲에너지 신산업의 성장동력화 및 수출산업화 ▲에너지복지 및 정책수용성 강화가 그것이다. 요체는 어떻게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통해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이뤄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2030년 전력 믹스상 원자력 발전 비중을 기존의 24%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출 계획이다. 

전략비축 확대, 국제협력을 통한 수입선 다변화, 핵심광물(망간, 코발트 등) 재자원화 등을 연계한 전(全)주기적 에너지 공급망 강화 방침도 세웠다. 

화석연료 수입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마련했다.

화석에너지 비중을 줄이면 2030년 화석연료 수입이 2021년 대비 약 4천만 석유환산톤(TOE) 감소해 에너지안보 강화, 물가안정, 무역수지 개선 등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원전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활용을 확대하는 것은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주요국들은 신규 원전, 노후 원전 계속 운전, SMR(소형모듈원자로) 투자 등을 통해 원전 활용도를 높여가고 있다.

EU가 지난 2월 친환경 경제활동을 분류하는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킨 것도 주목할만 하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원자력이 필요함을 인정한 셈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생태계 복원에 나선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 쏠린 에너지 믹스의 균형을 잡는 일은 필요하다. 

정부의 에너지믹스 정책이 얼마나 합리성을 담보하고 실행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에 밀려 재생에너지의 역할과 비중이 과도하게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최근 부쩍 활발해진 RE100(Renewable Energy100) 확산 움직임에서 보듯 '재생에너지 대세론’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사진=시사경제신문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사진=시사경제신문 자료사진

전 세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제조기업 중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삼성전자가 지난 9월 ‘RE100’ 선언을 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RE100에 나선 가운데 삼성전자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그 대열에 동참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의 현주소를 살펴봐야 한다. 2020년 한국의 풍력·태양광 발전량은 21.5TWh로, 이는 삼성전자 전력 사용량의 80%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RE100 달성 시점을 2050년으로 ‘여유있게’ 잡은 것은 열악한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2030년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32.8%로 끌어올리고 재생에너지는 21.5%로 낮출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비교하면 원전은 8.9%포인트 높아진 반면 재생에너지는 8.7%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탄소중립 달성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RE100 가입 여부가 ‘신(新)무역장벽’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전체 국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30%)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RE100은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축소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겪는 산업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안보의 역주행이다. 

에너지 정책이 도그마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 일방주의’가 위험한 만큼 ‘원전 만능주의’도 위험하다. 이념이 아닌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이 에너지 안보 나아가 경제안보로 이어지는 시대다. ‘원전 되살리기’에 노력을 쏟는 것과 별개로 재생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도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에너지 안보요 경제안보다.

[시사경제신문=김종면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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