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산업경쟁력·소비자후생 저하...폐지론 옹호
중소기업계, "중기에 최소한의 안전망"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3월28일 고궁박물관 인근에서 중고차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주현 기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3월28일 고궁박물관 인근에서 중고차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주현 기자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가 폐지 논란에 휩싸였다.

중기적합업종제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해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에 의해 지정 업종이나 품목에 대해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제도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은 3년 동안 관련 업종과 품목에 대한 사업이 사실상 금지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시행된 중기 적합업종제도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110여 개에 업종·품목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올해 5월에는 대리운전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신규 지정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놓고 산업발전을 저해해 소비자 후생 뿐 아니라 산업경쟁력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 보고서를 통해 “중기적합업종제도는 사업체의 퇴출 확률을 낮춰 사업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보호 역할은 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를 보였다”며 “적합업종제도가 해당 품목이 속한 산업 전반의 성과에도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제도 운영의 실효성이 낮다고 진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KDI는 “중기적합업종 합의 신규 신청을 중지하고 현 지정 업종에 대한 해제 시기를 예시하여 점진적 폐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폐지론에 불을 지폈다.

경제계는 중기적합업종이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아 산업 경쟁력 발전을 저해한다며 폐지론을 옹호하고 나섰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 중 LED(발광다이오드) 조명기구 등 외국 기업이 우리 시장을 잠식해버린 사례도 있다”며 “‘우물 안 개구리’식 보호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기적합업종은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지정이라기 보다는 대중소기업 간 합의와 조정으로 지정된다”며 “윤석열 정부가 기업들 간의 자율 상생을 강조하는 만큼 중기적합업종제도가 더욱 강화되는 게 맞다”고 반론을 폈다.

이어 그는 “KDI는 중기적합업종제도 시행이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에는 한계를 나타냈다고 했다”며 “그러나 우선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고 경쟁력 제고를 기대하는 것이 맞지 않나. 경쟁력도 없으니 보호도 해주지 말자는 것은 중소기업계는 죽으라는 말이나 똑같다”고 지적했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21일 JW매리어트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21일 JW매리어트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김남근 변호사는 “대기업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중기업종에도 진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시도 또는 진출이 생존권 문제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기적합업종제도는 국내 소규모 시장에서 중소기업들이 영위해야 할 업종들에 대기업들의 진출을 자제하자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며 “대기업들이 나서서 국가경쟁력을 갖춰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업종들은 따로 있고 그런 업종들이 중기업종으로 지정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들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21일 JW매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산업 경쟁력 제고만 놓고 존폐를 논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산업 경쟁력 제고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기업들의 상생발전 차원에서 경영이 불안정하고 경쟁력 제고를 꾀할 수 없을 정도의 영세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하다”며 “그게 바로 중기적합업종제도”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이 제도로 대·중소기업의 협의를 통해 소비자 후생 측면과 경쟁력 제고 측면 등에 저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접점을 찾아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경제신문=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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