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유임 이후 고심해 준비한 사과문 발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법 거부권 파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와대를 향해 또 다시 몸을 낮췄다.
 

유 원내대표는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청 관계 개선을 향한 그의 저공비행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정책위 2015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의 '자숙 모드'에도 박 대통령의 마음은 풀릴 줄 모르고 친박(박근혜)계의 날세우기가 끊임없어 유 원내대표의 연착륙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 원내대표는 전날(25의원총회에서 유임된 뒤 당청 소통 부족과 관련,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 공개석상에서 박 대통령에게 연달아 사과했다.

전날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친박 의원들이 책임론을 제기한 것에 정면 돌파 대신 낮은 자세를 보였던 유 원내대표가 한층 더 고개를 숙인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저공비행은 지금 반발할 경우 여권이 자중지란에 빠지는데다 지금은 청와대와 싸울 시기기 아니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새누리당 공식 지도부 회의가 개최되지 않은 이날 오전 유 원내대표는 유일한 공식 일정이었던 당 정책위원회 2015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어제, 오늘 아침 조간 신문을 보고 아마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서 원내대표로서 꼭 좀 한말씀 드리고 싶어서 준비해온 말씀을 올리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작정한 듯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유 원내대표의 평소 발언 스타일은 준비된 원고가 있어도 즉석에서 의견을 쏟아내는 것이었으나 이 자리에선 미리 쓴 원고에 집중해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나갔다.

유 원내대표는 전날 밤부터 박 대통령을 향한 사과를 고심하기 시작해 수여식 직전까지 직접 원고를 수정한 끝에 입장을 발표했다고 한다. 원내부대표단과도 원고를 두고 직접적인 상의는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법 개정안 문제로 당청 갈등이 지속되던 때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던 김무성 대표가 저자세를 권했음에도 고집을 꺾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던 유 원내대표가 전날을 기점으로 전향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향한 사과 발언도 김 대표가 전날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는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오해산 것을 사과하라. 대통령을 화나게 한 일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을 바로 받아들여 이뤄진 것이다.

당 내에선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까지 전향적으로 사과할 줄은 몰랐다는 분위기다.

현장에 있었던 한 원내부대표는 "유 원내대표는 진심이 아니면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다""나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의 급격한 저자세는 박 대통령의 전날 작심 비판과 친박계의 집단공세에 대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국가와 당을 위해 진정성을 담아서 사과한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라고 배경을 풀이했다.

또한 29일로 예정된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계 최고위원들의 총공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를 감안해 주말 전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박 대통령의 탈당설도 유 원내대표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탈당이 현실화될 경우 당청 분열과 총선 패배를 부를 수 있다.

유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두고 "보류"라는 친박계 의원들의 목소리도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유 원내대표 거취는) 종결이 아니라 보류라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사퇴에 무게를 둔 언급을 했다.

여기에 당장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정현 최고위원이 공격에 가세하고, 신의 관계로 그나마 유 원내대표의 책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던 서청원 최고위원까지 사퇴론에 힘을 싣는다면 사퇴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서 최고위원이 전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나 같은 경우엔 과거 원내총무를 할 때 노동법 파동으로 책임진 일이 있다"고 한 것에 비춰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그간 유 원내대표를 안고 가려는 의지를 보였던 김 대표의 중재 노력이 한층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의총 결과에 대해서 최고위원들과 잘 상의해보겠다. 잘 수습을 해보겠다"고 한 만큼 사태 수습에 힘쓸 예정이다.

다만 청와대의 강경한 기류로 지속되는 당청 갈등과, 친박 공세에 당 내 중론이 영향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김 대표가 기존 입장을 고수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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