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만원으로 주거 어떻게 마련하나” 토로

동해안 산불로 전소된 강원도 동해시 B씨의 집이 26일 철거되지 않은 채 잿더미로 남아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동해안 산불로 전소된 강원도 동해시 B씨의 집이 26일 철거되지 않은 채 잿더미로 남아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강원도·경북도 지역에서 지난 3월4일 발생한 산불은 약 2만923ha(산림청 추산)를 태우고 난 지난 17일 완전 진화됐다.

지자체, 산림청, 소방청 등 헬기 723대가 이번 진화작업에 동원된 가운데 산불 발생 후 열흘 만인 지난 13일 주불이 진화된 데 이어 나흘 만에 잔불까지 진화된 것이다.

이번 산불로 주택 319채와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등 31개소 등 총 643개소의 재산이 불에 탄 것으로 추산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406세대 585명(3월30일 기준, 울진군 327세대 366명, 동해시 73세대 112명, 강릉시 5세대 5명, 삼척시 1세대 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 봤다. <편집자주>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에 26일 '임시거주시설'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곳에는 26일 현재 20여 세대 40여명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이재민 임시거주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에 26일 '임시거주시설'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곳에는 26일 현재 20여 세대 40여명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잿더미만 남았다. 삶의 터전과 가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번 동해안 산불로 집이 전소된 이재민들은 주거비 1600만원 지원 등 주거 대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에게 주거 마련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국가철도공단 망상수련원(이재민 임시거주시설) 등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같은 처지의 이재민들에게 어려운 일을 잘 헤쳐나가면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조부모 영정사진도 건지지 못한 게 한”

동해안 산불로 전소된 집터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가 26일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동해안 산불로 전소된 집터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기 위한 공사가 26일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강원도 동해시 주민인 70대 A씨는 집이 전소된 날, 집 쪽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불기둥이 세차게 몰려오자 집이 순식간에 잿더미만 남긴 채 내려앉았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70여년을 살아온 집을 그렇게 잃었다.

돌아가신 조부모와 아버지의 영정사진조차 건지지 못했다. 가족의 역사와 삶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순간이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업고 돌아볼 틈도 없이 황망하게 택시를 잡아탔던 게 집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A씨는 조상들과 가족들의 삶이 담긴 집을 끝내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서 다시 집을 짓기로 했다. 동해시가 지원하는 조립식 주거시설(컨테이너)에서 1년 생활 후 다시 1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2년간 거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실상 집을 지을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에서 재난구호 차원에서 주거비 명목으로 지원할 예정인 160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제작비용이 4천만원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다. 온전한 집을 짓는 데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A씨는 노모와 자신 앞으로 나오는 80~90만원 정도의 연금과 차상위계층 지원 혜택 등으로 생활해 왔다. 대출을 받더라도 상환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

화재를 당하고 난 뒤 불면증에 시달리고 가슴에서도 열이 난다는 A씨. 그는 “내 집을 다시 짓는 꿈이라도 꿀 수 있어야 희망이 생길 것 같다”며 살짝 눈시울을 적셨다.

“땅 없어 집 못 짓는 게 안타까워”

3년 전부터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거주하던 60대 B씨는 집에 불이 사정없이 옮겨붙으니 도망가라고 해서 정신없이 뛰쳐나왔다고 했다. “불이 무섭게 번지기는 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불 끄기에 나서 일부라도 건졌다”며 나이를 탓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다. 다 타고 잿더미가 된 집에 문짝만 덩그러미 남았다. 마치 화재로 다 타 버린 집을 애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B씨의 집이 있던 땅이 다른 사람의 소유여서 B씨는 그 땅에 다시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임대주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2년 동안 관리비로 5만원을 납부하면 무상으로 거주할 수 있다. 2년 후부터는 20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내고 6년까지 살 수 있다. 허리가 아파서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우선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임대주택 입주 준비에 충실하기로 했다. 임대주택 입주를 디딤돌로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러나 집을 다시 갖기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어두운 터널 만난 듯...헤쳐나간다면 희망 있을 것”

C씨의 집터에 설치된 컨테이너 모습. 동해시 지원으로 설치된 1호 컨테이너다. 사진=박영신 기자
C씨의 집터에 설치된 컨테이너 모습. 동해시 지원으로 설치된 1호 컨테이너다. 사진=박영신 기자

70대 C씨는 기와집 처마에 시뻘건 불길에 이어 시커먼 연기가 차올라 숨이 막혀올 때까지 마당 끝에 서서 이 집에서 보낸 순간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앞으로 다시는 구할 수 없는 족보와 고서들이 재 한 줌으로도 남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망연자실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기 위해 부모님집으로 이주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임시거주시설 입주 인원이 꽉 차서 입주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동생 집에서 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집터에 동해시 이재민 중 가장 첫 번 째로 컨테이너가 설치됐다.

앞으로의 대책을 묻자 그는 거두절미하고 “집을 짓겠다”고 답했다. 이어 “1600만원의 주거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그는 “정부·기업 등의 다양한 지원·후원에 감사드린다”면서도 “주거 마련을 위한 현실성 있는 지원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C씨는 “화재를 당한 이 상황이 마치 어두운 터널을 만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려움들을 개선하고 헤쳐나간다면 발전이 있지 않겠나”고 이재민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한편 산불 이재민에 대한 구호·지원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에 따라 생계비·주거비·구호비·교육비 등을 지원토록 했다. 이 중 주거비는 주택이 파손되거나 유실된 사람 등에 대해 한 세대당 전소(전파)의 경우 1600만원, 반소(반파)의 경우 800만원을 지원토록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주거비 상향지원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며 늦어도 다음주 초까지는 협의가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경제신문=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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