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참 정신은 ‘인간이 가는 진리의 길’이다

▲ 예원교회 정은주 담임목사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복음 정신[요8:1~11▶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 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 본문은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를 예수님께서 재론의 여지도 없이 깨끗하게 해결한 이야기로 일반인 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져야 할 영적인 생각과 시각이 복음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은 ‘복음 정신’입니다. 정신이란 영혼과 마음의 자세나 태도 따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과 보는 시각이 모두 복음일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경적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복음의 참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정죄하는 마귀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 8:1~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계시는 동안 성전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는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예수님을 올무에 빠트려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듣고 수많은 무리가 감동을 받고 따르자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지게 될 것을 염려해 이 같은 범죄를 모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아주 절묘한 타이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치밀한 작전을 세워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 앞으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 이렇게 질문합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 8:4~5) 이 질문을 던진 그들은 몹시도 의기양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야 말로 자신들의 계략에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율법에 기록된 대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면, 예수님께서 지금껏 전하신 말씀과 행하신 사역이 헛된 미사어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죄인들의 친구로 알려져 왔습니다.
(마 9:13)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이미 바리새인들 앞에서 선포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과 모순되는 상황에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신뢰를 잃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돌로 치지 말라고 한다면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 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율법을 신성시하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완전히 생매장 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계략은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런 상황 전개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속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간음하다가 잡히면 현장에서 즉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그 시각에 정확하게…….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철저한 음모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영적으로 눈을 열고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마귀의 궤계는 이처럼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고 죽이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등이 가진 본연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하나님의 본래 의도대로 백성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도 하나님 말씀입니다. 율법의 본래 목적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죄인 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율법의 본디 목적은 망각하고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 6:11에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복음 체질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사상이 복음으로 무장되어야 마귀의 궤계, 사악한 유혹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마귀의 궤계를 이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속지 않으면 됩니다.
그 비결은 항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 살리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이 살아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죽게 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 말과 행동을 하면 됩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복음 정신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용서하시는 예수님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6~8)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음모로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빠지게 된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시다가 그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자 이내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과연 무엇이라 쓰셨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두고 많은 신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아마도 간음한 여자를 정죄하던 이들의 숨은 죄 목록을 쓰시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누구에게나 숨은 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는데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죄인인 인간이 누군가를 정죄할 수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 8:9) 방금 전까지 예수님을 압박하던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내용을 보고는 하나둘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갔습니다. 양심에 찔린 그들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다 자리를 피하자 결국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향해 질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 8:10~11) 여기에 바로 복음의 참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주 잘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이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지금 간음한 여자가 지은 죄는 자범죄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짓게 된 것은 원죄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은 결국 이 원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원죄는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범죄한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 사람은 누구나 죄 문제에서 해방됩니다. 이에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주어진 이 용서의 축복을 완전히 맛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날마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십자가 사랑의 실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군대의 한 선임하사가 신병 교육을 마치고 소대에 갓 배치된 신병에게 물었습니다.
“군인 정신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신병은 군기가 꽉 찬 상태로 대답했습니다.
“군인은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고,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며…”
나름 자신의 생각을 힘차게 말하고 있는데 선임하사가 신병의 뒤통수를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 제정신이 아닌 게 바로 군인정신이야.”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것이 군인 정신이라는 말에서 나온 우스개입니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군인 정신을 가지면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취해 생활하게 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지만 성령 충만으로 힘입으면 가능해집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 정신인 용서와 사랑을 통해 현장을 살리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복음 정신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음모를 넘어 설 수 있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가까운 사람을 통하여 정죄하며 우리의 힘을 빼려 하지만 용서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니 그에 힘을 얻어 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시고 그러한 증거를 가지고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내는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