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법’ 시행 후 4년차...오히려 더 심각해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피해자 될 수 있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 차를 맞았지만, 오히려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 차를 맞았지만, 오히려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분노를 삼키자니 속병만 나고.” 

근로자 A씨는 직장을 ‘전쟁터’라고 비유했다. 그는 지속적인 상사의 폭언에 제대로 된 반박없이 하루하루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4년 차를 맞았지만, 근로자 10명 중 3명은 여전히 일터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등이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0.1%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전인 2019년 6월 44.5%에 비해 14.4% 줄었지만, 피해자가 체감하는 괴롭힘의 정도와 수준은 오히려 그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 조사 단체의 분석이다. 

특히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자 가운데 수준이 ‘심각하다’고 말한 비율이 법 시행 전 38.2%에서 10.3% 증가한 48.5%로 나타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피해자 34.8%는 병원 진료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실제 진료·상담을 받은 직장인이 6.6%, 진료·상담이 필요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28.2%였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직장인도 10.6%나 됐다. 직장 갑질로 고통받는 피해 근로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와 지자체의 강력한 방지책이 절실하다.

사진= 차희연 교수 제공
사진= 차희연 교수 제공

날로 진화하는 괴롭힘 방식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의 비판은 거세지고 있지만, 문제는 이 괴롭힘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얼마 전 신입 여사원 B씨는 나이 많은 남자 상사에게 웃으며 인사했을 뿐인데, 상사는 이를 호감으로 받아들여 그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고백을 거절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야근을 시키거나 업무에 대한 피드백보다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는 등 상사의 괴롭힘이 갈수록 심해졌다고 호소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비일비재 하다보니 신입 여직원에게 사내 모르는 사람을 보면 인사하지 말 것을 규정하는 회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를 활용한 신종 직장 내 괴롭힘도 만연하고 있다.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정황상 알 수 있도록 여론 조작을 통해 이른바 ‘마녀사냥’을 한다.

직장인 C씨는 피해자인 지인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익명의 게시판에 ‘최근 회사에 제품 품질 향상을 위한 TF팀이 구성됐는데, 경력이 얼마 없는 동료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그 바람에 사업 추진이 어긋나고 말았다. 일주일이나 야근했는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려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도 특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명의 동료를 지정했다”고 전했다.

차희연(차희연 심리연구소)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괴롭히더라도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며 “이와 관련해 알려지거나 처벌받을 걱정이 없을 때 사람은 누구나 잔인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익명일 때 악랄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고 주변인들에게 지탄받지 않을 때 손쉽게 폭력적인 행동도 일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박소현 노무사 제공
사진=박소현 노무사 제공

이제 그만! 참지말고 표현해야
일각에서는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는 사건들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자 이에 대처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목소리도 크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의 59.1%는 참거나 모르는 척한다고 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자도 32.2%에 달했다. 반면 가해자 측에 항의(28.2%), 사측·노조에 신고(4.3%),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신고(4.0%) 등 피해를 알리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 이유가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71.0%)’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17.0%)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일부 근로자들은 직장에서의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조직적, 개인적, 사회적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소현(노무법인 결) 노무사는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CEO의 윤리강령 선포 △내부 규정 관리 △직장 내 괴롭힘의 무관용 원칙 △명확한 징계 조치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으로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관리 책임을 회사에게 지우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과 조직문화를 떼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조직 차원에서의 관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러면서 “가장 좋은 해결 방식은 사건 발생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돼 온전히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해자나 피해자 둘 중 한명이 퇴사로 이어지는 수순”이라며 “이는 전체 구성원 및 조직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양 당사자에게도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사전 예방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개인적 대응 방식에 대해 차희연 교수는 △나를 제외한 2명의 내 편을 만들 것 △명확한 자기주장을 할 것을 조언했다.

직장 내 갑질을 남용하는 사건도 많아지고 있다.
직장 내 갑질을 남용하는 사건도 많아지고 있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새로운 문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D씨는 부서 내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기본적인 업무분장 이외에도 새로운 일들을 할당 받는다. 이렇게 할당 된 업무들을 직원들에게 분배하고 그 업무의 결과를 상부에 보고한다.

그는 “제대로된 업무분장 없이 또 일이 추가되면 직원들은 이를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로 신고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라고 판단해 신고하는 겨우가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차희연 교수는 “업무 이외의 개인적 심부름 등을 말할 수 있지만, 업무 분장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지하고 신고하는 추세라 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너무 예민하면 상사는 가해자, 부하직원은 피해자라는 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박소현 노무사는 “’상향식 괴롭힘‘의 한 형태로써 직장 내 괴롭힘을 업무상 고충처리의 방안으로 사용하고, 본래의 구제 목적을 벗어나는 수준의 신고가 남용된다”며 “실제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감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본인이 현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인지 확인여부와 더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지체없이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시사경제신문=서아론 기자]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