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문재인' 노선 벗어나 윤석열 정부만의 정책 의제 제시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초 시작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한미정상회담, 6·1지방선거 등 굵직한 이벤트가 연속된 숨 가쁜 시간이었다.

‘공정과 상식’을 화두로 내세우며 취임 초반 과반(한국갤럽 52%)을 기록했던 지지율은 100일 만에 반토막 났다. 100일 기자회견 이후 30% 초반대로 지지율이 반등했으나, 60대 이상 연령대를 제외한 모든 세대가 윤 대통령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검찰총창 출신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던 이미지는 집권 초기 검찰 편중 인사와 대통령 부부와의 사적 인연이 있는 인사 기용으로 무너져버렸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추천한 사람들의 대통령실 채용, 김건희 여사의 공사 분별을 잃은 처신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김 여사가 경찰학교 졸업생에게 경찰관 흉장을 수여하고 여성 경찰관들과 간담회까지 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소통을 강조하며 시작한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에서 잦은 말실수로 정책 혼선을 부추겼고, 갑자기 튀어나온 ‘5세 취학’으로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공분을 샀다. 집중 호우로 아파트가 침수되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퇴근한 대통령의 행보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가 쌓여가고 있다. 상황이 이런대도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윤 대통령의 모습은 ‘공정과 상식’을 기대했던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지난 17일 오전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시 동작구의 한 음식점 TV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방송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8.17
지난 17일 오전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시 동작구의 한 음식점 TV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방송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8.17

윤석열표 의제는 없고 ‘반문’ ‘반민주당’ 때리기에 올인

윤 대통령은 100일 기자회견에서 소개한 성과는 한마디로 ‘반문재인’이었다.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폐기, 탈원전 정책 폐기, 공기업 재편, 한·미 동맹 재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주요 성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며 “우선 ‘소주성’과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했고, 경제 기조를 철저하게 민간 중심, 시장 중심, 서민 중심으로 정상화했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을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것도 치적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은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산업을 다시 살렸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방만하고 비대화된 공공기관을 핵심 기능 위주로 재편했다”, “한-미동맹을 재건했다”, “역대 최악의 일본과의 관계 역시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전 정부 주요 정책 폐기를 성과로 제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경제 정책이나 외교.안보 정책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권 초기부터 지적된 ‘윤석열표’ 정책 기조가 무엇이냐는 의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반문재인’ ‘반민주당’이 윤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과 가치관으로 보일 정도다. 특히 그동안 제기된 인사 논란과 정책 혼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필두로 한 여당 내홍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뭉개거나 회피하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에 대한 해법을 외면한 채 전 정부 때리기에 100일을 소비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반문’ 기조는 정권 초반부터 시작됐다. 취임 초기 연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쟁점화하고, 산업통산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 문재인 정부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경제정책 방향도 ‘반문’이었다. 법인세·부동산세와 주52시간제 관련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되돌리는데 주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인적 쇄신 여론에 묵묵부답...여전히 검찰 출신이 장악

윤 대통령은 지지율 폭락 원인과 인사 논란에 대해 “여러 지적 사항에 대해 국민 관점에서 세밀하게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며 “되돌아보면서 철저하게 챙기고 검증하겠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 1순위 요인인 ‘인사’를 개편할 의지가 엿보이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인적 쇄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어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절망’(18일 넥스트리서치 조사)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여론조사다. 대선 기간 내내 불안한 말과 행동에 국민들은 ‘정치 초년생이기에 미숙할 수밖에 없다’는 동정 여론이 있었으나, 이제 초보 정치인에게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맡기기에는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윤 대통령 본인뿐이다.

경제학자들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을 외치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경제학회가 강원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개최한 ‘신정부 출범 100일, 경제정책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경제학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민신뢰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정운천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는 “윤석열 정부는 지금 신뢰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의 정책 담당 인력구성을 보면 서울대 출신과 검찰을 비롯한 공무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집단에 편향된 대통령실과 내각 구성은 국정 전반의 다양한 문제와 국민들의 이해를 균형 있게 파악하고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는데 커다란 제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8월12일자 매일경제신문).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출마 선언을 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5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소통과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저 윤석열, 경청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정치의 본질은 다양한 이해, 가치와 신념의 차이가 빚어낸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지도자의 ‘독선’으로 문제를 정리하나 민주주의에서는 오직 대화와 타협만이 해결책이다.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민이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반문재인' 노선에서 벗어나 윤석열 정부만의 정책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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