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중고등학교 김한태 교장
누가 세상은 발전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누가 한국의 교육을 썩은 우물이라고 했던가? 비록 어른들이 일궈놓은 세상과 교육은 쇠퇴하고 썩었을지 모르나 그 안에 자생하는 우리 학생들의 사고는 기성세대의 사고와 감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근래에 학생들의 대학 입시 거부 운동을 보면서 필자가 느끼는 생각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문제아, 학교 부적응아로 치부될 수 있다. 미래의 성공과 안락한 삶을 위한 공부를 포기하는 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그들을 불효자라고 몰아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 공부라는 것이 ‘미래의 성공과 안락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는가?

우리 기성세대들이 국란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발전을 이룬다는 취지하에 실용주의와 신자유주의 질서를 정당화시키는 동안 교육의 가치, 학문의 중요성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실용주의와 신자유주의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자위를 하며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현재 우리의 후손들까지 그 방법을 강요하면서 성공과 안락을 학문의 목적으로 삼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이 교육의 틀을 바꿀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현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 교육의 수혜자이자 추종자가 되어 있다. 좋든 싫든 이 틀 안에서 버텨야 학교가 운영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학생들, 우리 아이들이 그 틀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현 교육제도의 폐해를 조목조목 살펴보면 틀린 말이 별로 없다. 차라리 못난 자식의 칭얼거림이었으면 가정교육을 못한 스스로를 탓할 수 있겠지만, 어른들 보다 더 용기 있고 통찰력 있게 교육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외침은 나 하나를 탓하기엔 너무나도 무능해진 이 공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안교육에서조차 마찬가지다. 공교육의 획일성과 강압성을 거부하고 본인 스스로가 주체적인 삶을 찾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인 이곳에도 학년이 올라가고 성인이 되어갈수록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에 갈등한다.

아무리 대안학교에서 정규교육의 대안을 갖고 참된 교육을 하며 학생들 개개인의 다양성과 인성 개발을 실시하고 있지만, 도리어 인가와 비인가, 지원과 미지원의 줄타기를 통해 어떻게든 공교육의 반대급부를 최소화 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우리 대안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에게 삶을 바라보는 올바른 사고를 만들어줄 수는 있으나, 그들에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입시와 취업의 문턱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공교육의 문제에 고민을 안고 대안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필자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근래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입시거부와 자살 등의 사지로 내보낸 것이 다름 아닌 우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이 사회를 구축한 어른들이 잘못을 느껴도 시원찮을 판에 학생들이 먼저 교육을 바꿔보겠다고 길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야기다.

정부 당국은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철없는 학생들의 행동으로 치부하지 말고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학부형들과 교육당국은 올바른 교육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교육기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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