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동부초 시절 '육상대회' 출전 계기로 축구와 인연 
K리그 통산 ‘득점 1위, 도움 2위, 공격포인트 1위’ 기록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종횡무진 경기장 누벼
등번호 20번 영구결번... 32년 축구 인생의 '공적' 기려
사업가, 방송인, 해설자 등 제2의 인생으로 선한 영향력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박이 아빠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 선수는 은퇴 후 사업가, 방송인, 해설자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이동국 FC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근형 작가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박이 아빠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 선수는 은퇴 후 사업가, 방송인, 해설자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이동국 FC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근형 작가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대박이 아빠 전 축구 국가대표 이동국 선수는 은퇴 후 사업가, 방송인, 해설자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동국은 K리그 통산(通算) ‘득점 1위, 도움 2위, 공격포인트 1위’, AFC(Asian Football Confederation,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득점 2위 등의 기록을 남겼다. 대한민국 축구선수 유일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모든 리그에서 득점을 올리며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은퇴 전 뛰었던 전북현대모터스는 그의 등번호 20번을 영구결번하며 이동국 축구 인생의 공적을 기렸다.

이동국은 포항 동부초등학교 시절 육상대회 출전을 계기로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타고난 체격조건과 뛰어난 운동실력을 가졌던 그는 일주일 연습 후 처음 출전한 육상대회에서 100m, 200m, 멀리뛰기 3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그는 대회 관계자로 참가한 한 축구팀 감독의 눈에 띄었고, 부모님을 찾아가 ‘국가대표로 키워보겠다’는 감독의 끈질긴 설득 끝에 축구 인생의 문을 열었다. 

축구팀에 갓 합류한 이동국은 천부적인 볼 감각을 보이며 주전 스트라이커(공격수)로 뛰었으며 은퇴 전까지 이 포지션과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역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그는 고교재학 시 우승 2번, 준우승 2번 등 4개의 트로피를 모교에 안기며 아마추어 시절의 막을 내렸다. 이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프로 입단 후 바로 주전으로 발탁돼 포항스틸러스를 시작으로 23년 프로 무대의 첫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1998년 5월 16일 자메이카와의 친선 경기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잔디를 누비며 국가대표로서 첫선을 보였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달린 이동국은 국가대표로서 뛴 매 순간의 경기를 자랑스러워했다.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그들 중에서도 경기에 뛸 수 있는 주전 싸움, 콜럼버스나 월터 롤리 같은 탐험가들이 머나먼 엘도라도(황금도시)를 찾아 떠나는 길과 같다. 

그는 2020년 은퇴 경기에서 전북현대모터스에 우승컵을 안기고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관람객들은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지켜보며 그를 축구장에서 놓아주었다. 

이동국은 당시를 회상하며 ”은퇴식에서 절대 울지 않기로 다짐했으나 이제 그라운드에서 관람석을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에 소리 없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 말을 잇지 못했다“며 ”지난 축구 인생이 필름처럼 스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목이 메인다는 말을 처음 실감했다”는 짧은 소회를 밝혔다. 

지금 이동국은 경기장에서 관람석을 바라볼 수 없지만 관람석에서 자신의 제자들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0월 19일 이동국 FC에서 선수 시절의 볼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근형 작가 
10월 19일 이동국 FC에서 선수 시절의 볼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근형 작가 

◆2009년 전북 입단 후 첫 ‘우승컵ㆍ득점왕ㆍMVP’ 석권 ‘생애 가장 큰 선물’ 받아

이동국은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전북현대모터스에서 11시즌 동안 활약했다. K리그 우승, FA컵 우승, AFC(Asian Football Confederation,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모두 달성했다. 

1998년 포항스틸러스를 시작으로 프로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2009년 전북 입단 후 첫 ‘우승컵ㆍ득점왕ㆍMVP’를 석권하며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 이후 K리그 8개, FA컵 1개, ACL(챔피언리그) 1개 등 10개의 우승컵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동국은 그 시절을 기억하며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힘들었던 과정에 대한 보상을 받은 듯 했다”며 “우승컵을 품기 위한 1분을 위해 축구 인생을 바쳤다”고 말했다. 

2009년 이동국의 전북 현대모터스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간 ‘K-리그 챔피언십’은 6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몇 번의 경기를 치러야 했다. 리그우승팀(전북 FC)을 제외한 다섯팀들이 토너먼트를 통해 승부를 가렸고, 최종 승리팀(성남 FC)이 리그우승팀과 결전을 벌였다. 당시 리그 1위 전북은 약 한 달 동안 공식적인 게임 없이 상대팀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동국은 당시를 설명하며 “이 한 달 동안이 지나온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상대팀은 게임을 통해 볼 감각과 경기력을 키웠지만 전북(리그 1위)은 그 시간 동안 게임을 뛸 수 없어 경기력 및 골 결정력 등 모든 면에서 부담감이 컸다”며 “아무리 리그 우승을 차지했어도 이 결승전에서 패하면 챔피언십 준우승에 그치기 때문에 압박감이 가중됐다”며 하루하루 긴장감 속에 보냈던 나날을 되짚었다. 

10월 19일 사업가로 변신한 이동국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난 축구 인생을 기억하고 있다. 사진=이근형 작가
10월 19일 사업가로 변신한 이동국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난 축구 인생을 기억하고 있다. 사진=이근형 작가

◆1남 4녀의 다둥이 아빠 이동국 육아의 왕 ‘슈퍼맨’으로 돌아오다

현재 이동국은 1남 4녀의 다둥이 아빠 또는 모델 재시의 아빠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15년~ 2019년까지 다섯 자녀를 둔 현역 축구선수로서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육아 도전을 통해 KBS 연예대상 ‘최고엔터테이너상’, ‘버라이어티최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동국은 “설아 수아 쌍둥이 자매가 태어날 때 방송국 섭외를 몇 번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현역 축구선수로서 프로그램에 선뜻 나서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때 아내가 육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성장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으면 우리 가족사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권유해 방송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2박 3일 촬영 동안 설아, 수아 아들 시안이를 오롯이 혼자 돌봤다. 잠도 설쳐가며 아이를 돌보는 일은 보기와 다르게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육아가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 아내를 더 많이 돕기로 다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소중한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력이 높아졌다. 아빠로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과 자식뿐만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공을 잡은 이동국은 현재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축구를 통해 협동심과 배려심을 배웠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얻었다. 특히 프로선수, 국가대표로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이제 그는 지도자, 방송인, 해설자란 이름표로 축구를 통해 ‘밝은 세상 만들기’에 일익을 담당하는 선한 영향력에 집중하고 있다.

10월 19일 이동국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근형 작가
10월 19일 이동국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이근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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