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라디오에서 듣던 노랫말로 자신의 처지 위로
10대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운명처럼 가수의 길 걸어
40년 넘는 무명시절 참고 견딘 인생역전의 국민가수
“박수칠 때 떠난다”는 신념 아래 남은 무대에서 ‘최선’ 

40년 넘는 무명시절을 참고 견딘 인생역전의 국민가수 진성. 사진=토탈셋
40년 넘는 무명시절을 참고 견딘 인생역전의 국민가수 진성. 사진=토탈셋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 저리 살았을거라 착각도 마라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

가수 진성이 작사 작곡한 ‘태클을 걸지마’에 나오는 노랫말의 일부분이다.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 그가 살아온 세월의 진한 애환이 묻어난다. 지나온 삶에 대한 절규이자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다. 진성은 대중의 격려와 박수를 통해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갈 것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중 한 소절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이다. 부모님의 부재로 남의 집을 전전하던 유년 시절 진성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미자, 남진 등의 애닮은 노랫말에서 위로를 받았다. 어린 꼬맹이는 한 번 들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바로 따라 부를 만큼 음악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진성은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를 친구삼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렇듯 그에게 노래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갯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그가 부른 보릿고개의 한 대목이다. 애잔한 노랫말을 가슴에 품던 코흘리개는 불혹(40세)을 넘어 지천명(50세)을 지나, 환(61)·진갑(62)을 넘긴 지금,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로 그 시대의 고난과 슬픔을 추억으로 재생한다. 

그는 노랫말을 통해 그 시절의 감성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한다. 
진성은 노래를 부를 때 멜로디와 함께 가사 전달력에 가장 집중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곡의 의미를 듣는이와 함께 최대한 공감하려 노력한다. 지나온 세월 수많은 부침(浮沈)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이고 다져져 생명력 넘치는 진정성으로 대중에게 다가선다.

현재 진성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가수로서 황금기를 맞고 있다. 오랜 무명시절을 관통한 연륜과 경험이 녹아든 삶을 노래해 대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통해 받은 위로와 위안을 대중에게 돌려주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진성은 “67세 즈음 노래를 그만두고 1~2년 동안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다 70세부터는 초야에 묻혀 인생을 돌아볼 여유를 찾겠다”며 ‘박수 칠 때 떠난다’는 신념을 비췄다. 1960년생 진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공식적인 모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생의 쉼표를 찾아 떠날 그의 선택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10대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운명처럼 가수의 길을 걸어온 진성. 사진=토탈셋
10대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운명처럼 가수의 길을 걸어온 진성. 사진=토탈셋

◆40년 무명생활을 이겨낸 내공과, 타고난 재능으로 자신의 진면목 보여 

코흘리개 시절부터 따라 불렀던 노래는 반백 년 세월 그림자처럼 그와 한 몸이 됐다. 15살에 쇼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고, 17살~18살 야간업소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그렇게 40여 년의 무명생활을 견뎠다. 25살에 메들리 음반을 출시해 유명세를 타면서 먹고사는 걱정은 덜었지만  가수로서 대중에게는 익숙지 않았다. 

진성은 트로트 메들리를 부르면서 이 업계에서는 제법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만의 곡을 부르고 싶어 30대에 ‘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했다. 이 곡은 세월이 훌쩍 지난 후에야 역주행으로 빛을 봤지만 당시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이렇게 그는 30대 시절에도 밤무대를 떠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노래의 끈을 놓지 못한 그에게 2012년 ‘안동역에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국민가수 진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에 또다시 큰 시련이 찾아왔다. 10대에 가수로 첫발을 떼고 40년 넘는 무명의 터널을 벗어나 연예인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려는 순간 심장 판막증과 림프종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진성은 부인의 극진한 간호 아래 죽음을 담보로한 심장 치료와 6차례의 항암투병을 이겨내고, 쇠약해진 몸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2017년 5월 아침마당에 출현해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길고 길었던 무명시절의 설움을 참아내고 아픔과 싸워가며 찾은 대중의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여유가 없었다.

타고난 재능과 끼, 50년 세월 무대에서 만든 내공 그리고 병마와 싸워 이긴 강인한 정신력에 부인의 내조가 더해져 ‘보릿고개’, ‘동전 인생’, ‘가지마’ 등을 모두 히트시킨 진성의 오뚜기 인생 제2막이 펼쳐졌다.

요즘 진성은 노래뿐만 아니라 오디션, 예능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신념 아래 남은 무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성. 사진=토탈셋
 “‘박수칠 때 떠난다’는 신념 아래 남은 무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성. 사진=토탈셋

◆삶의 바다에서 풍랑과 파도를 헤치고 우리 곁에 마주한 진성의 인생역전에 찬사

지금도 수많은 가수들이 스타를 꿈꾸며 무명생활을 버티고 있다.

진성은 이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길이다. 타고난 재능과 실력 없이는 가수로서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며 “자신의 능력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탄탄한 실력과 무한 반복적인 노력에 더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이겨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생은 요행도 여유분도 없다. 후배 가수들이 본인의 실력을 철저하게 검증해 올바른 길을 선택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진성은 인기에 힘입어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를 모르는 국민이 없을 만큼 이름도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유명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자유롭지 못해 심리적으로 나약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또 “인기를 누리고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질수록 사회적인 책임감 또한 커진다”며 “언제 어디서든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고 지나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기나긴 세월 무수한 풍파를 겪으면서 쌓아온 연륜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 늘 ‘겸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며 “자신의 인생 철학이기도 한 ‘겸손’을 항상 마음 한켠에 담아 둔다”고 말했다. 

삶의 바다에서 풍랑과 파도를 헤치고 우리 곁에 마주한 진성의 인생역전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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