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롯데가 유제품 전문기업 45년만에 ‘폐업’
2018년 오너일가 체제 회귀하며 적자행진
돌연한 일괄 ‘정리해고’ 통보에 노조 반발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다음달 30일 사업을 종료한다고 선언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푸르밀 본사 전경. 사진=김주현 기자​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다음달 30일 사업을 종료한다고 선언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푸르밀 본사 전경. 사진=김주현 기자​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다음달 30일 사업을 종료한다고 선언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푸르밀은 지난 17일 사업 폐지 선언과 함께 400여 명의 본사·공장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일괄 ‘정리해고’ 통보를 했다.

이 같은 파격적 결정은 최근 LG생활건강과의 매각 협상이 불발된데다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유제품 위주 사업이 적자를 면치 못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푸르밀은 사업 종료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회사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

푸르밀의 폐업 선언은 문자 그대로 ‘고육책(苦肉策)’인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자기 몸까지 상해가며 짜낸 계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너 리스크’에 따른 예정된 실패의 혐의는 없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푸르밀 경영체제의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푸르밀은 지난 1978년 롯데그룹 산하 롯데유업으로 출발,  2007년 그룹에서 분사했다. 당시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지분 100%를 인수했다.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변경했다. 전문경영인을 발탁해 운영하던 푸르밀은 2017년까지 2000억원대 중후반의 연간 매출액과 흑자기조를 이어가며 중견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푸르밀은 2018년부터 적자로 전환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 15억원이던 영업손실은 2019년 88억원, 2020년 113억원, 지난해엔 123억원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3년 새 8배 넘게 증가했다.

주목할 것은 2018년 오너일가 경영체제를 구축하면서 맞은 ‘경영실패’라는 점이다. 2018년 신준호 회장과 전문경영인이 함께 대표를 맡았던 푸르밀의 경영체제는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전문경영인을 대신해 공동 대표로 취임하며 오너일가 경영체제로 회귀했다.

이어 올해 초 신 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신동환 단독대표 체제가 됐다. 오너일가 경영체제로 바뀐 시점부터 실적이 곤두박질을 쳤고 오너2세 단독체제로 전환된 해에 폐업를 결정한 것이다.

오너일가의 방만경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유 소비 감소 등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하지만 경영진으로서 업황 부진을 만회할 신제품이나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경쟁사들이 건강기능식품이나 케어푸드 등으로 외연을 넓혀나가는 동안 푸르밀은 유제품에만 의존했다. 시설투자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LG생활건강은 푸르밀의 콜드체인에 관심을 갖고 인수를 검토했지만 푸르밀의 노후한 설비에 따른 사업성 저하를 우려해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오너일가의 경영 과실이 크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푸르밀 직원들은 사측이 어떠한 협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고 반발한다.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는 경영상 해고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 △사용자의 해고 회피 노력 △해고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 △근로자 대표와 성실한 협의 등 네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푸르밀 노조는 현행법상 정리해고 50일 전까지 직원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는데 사측은 사업종료 43일을 남겨두고 그런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한다.

푸르밀 노조와 푸르밀에 원유를 공급하는 낙농가, 푸르밀 제품을 운반하는 화물차 기사들은 사업 종료와 해고통보 철회 등을 요구하며 연대 투쟁에 나서기로 해 사회적 파문이 예상된다.  

신준호 회장은 지난 2007년 소주업체 대선주조를 약 600억원에 사들였다가 3년 만에 3600억원을 받고 사모펀드에 되팔아 ‘먹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배임 횡령 등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푸르밀의 돌연한 사업 종료 결정에 석연치 않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요컨대 ‘제2의 대선주조’ 꼴이 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에 뒤쳐진 안이한 경영으로 45년 역사의 중견기업을 한계기업 신세로 전락시킨 푸르밀 경영진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제라도 회사의 회생 방안을 다시 한번 강구해봐야 할 것이다. 

[시사경제신문=김종면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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