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 자랑하지만 초졸 이하 장애인 40%
시설·집 갇혀 교육 거의 못 받아...평생교육기관도 턱없이 부족

전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국가이지만 전체 장애인 중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봤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장애인이 40%에 달하는 나라가 또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장애인들은 헌법상 기본권인 교육권 보장에서조차 배제돼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을 통해 장애인들과 희망을 가꾸어나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는 곳이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들이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다.

12일 오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목공예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12일 오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목공예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이곳 야학에는 학령기를 넘어 성인기까지 쭉 시설에서 지냈거나 집에서만 지냈던 장애인들이 많아요.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거예요. 이분들이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천성호 노들야학 공동교장은 1993년 노들장애인야학 첫 개교 당시 초졸 이하 장애인이 45%에 달했다고 했다. 그러던 게 2020년 들어서는 40% 안팎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글도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의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천성호 교장은 “장애인들은 태어나서 몇십년 동안 이동의 제약 등으로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직장도 가져본 적 없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장애인들은 노동 영역에서도 배제돼 빈곤과 차별의 악순환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 교장은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으로 인해 벌어진 틈을 메꾸고 다리를 놔주는 일들을 장애인 야학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립생활 지원 통해 탈시설 이끌어

노들장애인야학 입구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노들장애인야학 입구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노들야학에는 80명의 장애인들이 공부하고 있다. 이들 중 발달장애인이 35명 뇌병변장애인이 45명이다.

노들야학은 국어·영어·수학 등 학교 교육과정보다는 춤과 노래, 그림 등 문화 활동과 자립생활 교육 등 위주로 구성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5년 전부터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드는 등 체험 과정을 통해 집은 어디에 어떤 방법으로 구할 것인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지역사회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왔다.

5년 전부터 이곳 야학에서 공부해온 발달장애인 20명 중 대부분이 현재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태미화 노들야학 교사는 “시설이라는 곳은 억압되고 반복적인 생활을 강요해 장애인들의 자기 결정 능력을 떨어뜨린다”며 “장애인들이 스스로 결정을 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장애인 야학의 역할이 더욱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문해율 99%이지만 문맹 장애인 많아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실 입구 사진=박영신 기자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실 입구 사진=박영신 기자

또 노들야학은 초·중·고교 과정의 국영수 과목 등 학력을 신장할 수 있는 수업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학생 6명을 검정고시에 합격시키기도 했다.

노들야학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최동운 씨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 과목이 제일 재미있다”며 “시설에 있을 땐 배우는 게 초등과정에 불과했는데 이곳에 와서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10년 간 노들야학에 다닌 그는 “이곳에 와서 탈시설을 알게 돼 임대아파트를 구해 자립도 하게 됐다”며 “앞으로 장애인인권과 권익옹호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해 장애인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태미화 교사는 “우리나라는 99%의 문해율을 자랑하지만, 정작 한글을 몰라 기초수급비 신청 등 주민센터 업무처리조차 하기 어려운 장애인뜰이 많다”며 “처음에 한글을 가르쳤는데 장애인들의 교육 배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천 교장은 “안타깝게도 장애인들이 학력을 인정받는다는 게 자기만족 외에 큰 의미가 없다”며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진학과 취업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 이어 노동 배제까지 '악순환'

이처럼 노들야학은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학교 교육과정 교육 등을 통해 장애인들의 소통·일상생활능력 뿐 아니라 학업능력을 신장시키는 등 역할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노들야학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노들야학은 서울시의 공공일자리에 학생 30여명을 참가시키는 등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종로구 공공일자리를 하고 있는 박희용 씨는 “첫 월급 받았을 때 나도 해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박 씨는 “월급을 저축해 앞으로도 쭉 자립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천 교장은 “장애인들이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만으로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또 장애인들 스스로 복지제도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천 교장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가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환경이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 교육권 뿐 아니라 노동권 쟁취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졸 이하 40% '육박'...선진국 자격 있나

12일 노들장애인야학 벽면에 시간표가 붙어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12일 노들장애인야학 벽면에 시간표가 붙어 있다. 사진=박영신 기자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세 이상 국내 등록 장애인 중 37.6%는 최종학력이 초교 이하(무학 포함)로 나타났다.

또 만 25∼64세 성인장애인의 최종학력은 중졸 이하 31.1%, 고졸 이하 45.0%, 대학 이상 23.9%였다. 같은 해 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국민의 최종학력은 중졸 이하 11%, 고졸 이하 39%, 대학 이상 51%로 나타났다.

이에 장애인들에게 평생교육이 절실하지만 평생교육 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해 기준 등록장애인은 264만4700명에 달하지만 장애인 평생교육기관은 30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교육기본법’에는 '모든' 국민이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국가에 있음에도 정부는 평생교육마저도 국고보조 제외사업이라며 국고 지원에 대해 사실상 거부해 왔다.

국가를 운영하는 ‘법 위의 법’인 헌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나라가 경제 수준만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배승천 노들야학 사무국장은 “국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교육권이 장애인들에게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 안타깝다”며 “그러나 이는 장애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 사무국장은 "장애인도 공부하고 일하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걸음씩이라도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사경제신문=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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