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모호한 규정...“보완 시급해”
尹, 처벌 대신 기업 자율 안전관리 강조...시행령 개정 박차 가할 듯

. 사진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브라이튼 여의도’도 건설현장.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김주현 기자
. 사진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브라이튼 여의도’도 건설현장.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김주현 기자

2개월 만에 만들어진 법으로 논란이 많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영계와 전문가 집단에서 규정이 모호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차기 정부가 법령을 처벌 대신 안전 지원으로 정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1월 26일 국회를 통과해 제정된 뒤 1년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됨에 따라 100일을 넘겼다. 그러나 지키도록 한 의무들을 규정하는 안전·보건 관계법령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가 1명 이상 사망할 경우,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CEO)·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법인·기관은 50억원)과 영업중단 등 행정조치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현행 중대재해법에는 ‘사고 발생 시 경영자 책임자 내지 안전책임자에 책임을 묻는다’라는 조항만 명시돼 있을 뿐 상세한 적용 범위 등의 규정이 없는 상태다.

한국노동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중대재해법 구체적 이행방안 토론회’에서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날치기법이라며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없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의 모델이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은 법 제정에 무려 10년이 걸린 것에 반해 중대재해법은 불과 두 달 만에 만들어졌다며 법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법 같지 않은 법이 아무런 제약 없이 시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무서운 법이 모호한 법이다. 걸면 어디든 걸리기 때문이다”면서 노동법이 잘 되어있는 나라에 중대재해법까지 더하게 돼 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기업들, 중대재해법이 ‘가장 문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기업 10곳 중 9곳이 ‘법 시행 후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로 ‘모호한 법 조항’과 ‘과도한 경영책임자 처벌’을 꼽았다.

이날 전경련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규제 개혁 체감도’는 95.9로 조사되면서 기준치(100)를 하회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의 규제 개혁 성과에 대해 대체로 불만족한다는 것을 뜻한다.

규제 개혁 성과에 불만족한 기업은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25.8%), 해당 분야 핵심 규제 개선 미흡(24.7%) 등을 불만족의 주요 이유로 지적했다. 아울러 규제 개혁에 불만족한다고 응답한 기업 중 27.3%가 중대재해법을 선택했다.

윤석열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규제개혁해야할 분야로는 ‘노동규제’(25.2%)가 꼽혔다. 주52시간제와 중대재해법 등 강화된 노동규제에 대해 기업들이 계속해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새 정부의 규제개혁에 대해 ‘기대한다’는 응답은 24.6%,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4.0%로 나타났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잿 값 폭등으로 인한 사업도 어려운 와중에 제대로 된 안내조차 없는 중대재해법까지 시행되니 두려움이 앞선다”면서 “건물을 짓다 보면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사고 발생만으로 대표이사 등이 수사를 받는다면 기업경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과도한 처벌 대상에서 피하고자 공사 등을 중단하고 사업을 그만둘 생각하는 경영인이 많다고 밝혔다.

尹, 처벌 대신 기업 자율 안전관리 강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2일 오후 울산 북항 동북아 오일가스허브 건설 현장에서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2일 오후 울산 북항 동북아 오일가스허브 건설 현장에서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산업안전보건관계법령을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인수위는 국정과제에서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을 명확화하겠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추진할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을 강조했다. 기업의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확산을 지원해 산업재해예방 강화와 실질적 사망사고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경련 등 경영계에서 “중대재해법에서 명시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관련 법 조항이 모호해 시행령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는 그동안 주장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중대재해법 후속조치의 경우 국회 심사가 필요 없는 시행령이나 하위 지침 개정을 통해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상반기까지는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사경제신문=김혜빈 기자]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