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자비와 사찰의 정기가 머무는 곳

광교산 기슭의 정기를 품은 곳
사찰이 주는 숙연함과 평안함 공존

목탁 소리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그린다

수원 광교산 기슭의 정기를 품은 봉녕사. 원금희 기자

 

한낮의 햇살이 따스한 어느날 오후, 비구니의 마음으로 봉녕사에 오르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수원 광교산 기슭의 정기를 품은 아름답고 청정한 이곳은 고려 희종 4년에 원각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비구니들의 수행 공간이다.

엄마 닭이 알을 품는 형상으로 ‘대적광전, 청운당, 우화궁, 소요삼장, 금비라, 육화당/향적실, 향하당, 범종각’ 등이 한 울타리에 모여 있다.

봉녕사를 바라보며 지나간 삶의 회한을 더듬는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리 살지 말아야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의 무게가 대적광전 언저리에서 무너졌다. 대적광전은 화엄경에 등장하는 비로자나 부처를 주불로, 좌우에는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 우주의 삼라만상을 주관하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로 진리의 본체이자 침묵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법신불이다.

법당 내 외부 벽에는 80권 화엄경에 따라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설법장면을 그린 벽화가 신비롭다. 상단의 후불탱화와 신중탱화는 목각으로 조성돼 있다. 누구인들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대적광전을 좌우로 모신 약사보전과 용화각의 근엄함이 사찰을 압도한다.

약사보전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난과 근심을 소멸해 의식을 다스리는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인연을 체득케 하는 부처가 모셔졌다. 온갖 병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중생들이 성불하는 곳이다. 육신과 마음의 병을 내려놓기 위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용화각은 석가모니불의 입멸(승려의 죽음)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난 뒤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구원할 미륵 부처를 모신 법당이다. 두 곳의 법당에서 기도하는 중생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이심전심의 마음이 통했다.

용화각을 바로 앞에서 수호하는 향하당. 이름만으로도 그 몫을 다하고 있다. 부처의 가르침이 향기와 같이 노을과 같이 온 우주 법계에 두루 비추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곳이다.

봉녕사 오솔길 끝자락에서 멀리 마주 보이는 우화궁. 학인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2층에는 금강계단이 갖춰져 식차마나니 수계식이 거행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수도하는 학인 스님들이 경전을 독경할 때 하늘이 감동해 꽃비 내리길 염원하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비구니계율근본도량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이 자리 잡은 청운당.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우고”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한 소절이 어렴풋하다. 비구니들의 수행 공간이다.

봉녕사 첫머리에 앉은 금비라는 정갈하고 깨끗한 사찰음식 교육관이다. 최신식 조리시설을 갖추고 계절에 따른 제철 재료로 다양한 요리강연과 실습이 이뤄진다.

금비라 맞은편 일자로 서 있는 육화당. 일요법회, 템플 등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언저리에 머무는 금라. 불교뿐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양 강좌와 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금라 옆자리를 차지하는 소요삼장. 경ㆍ율ㆍ론 삼장에 자유로이 노닌다는 의미다. 지하1층, 지상 3층 건물로 2만여 권의 불교 서적이 소장돼 있다.

이 사찰의 중심에 자리하며 봉녕사의 기운을 모으는 범종각의 숙연한 종소리는 중생의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봉녕사 한울타리에 모인 불당과 교육관, 문화공간을 둘러보며 사찰의 맑은 기운을 받았다.

부처의 형상이 무서웠던 철없던 어린시절을 나무라며 독선으로 바라봤던 종교의 벽을 허물고  편견과 오만의 잣대로 바라본 성공의 가치도 버렸다.

지인에게 속세의 마지막 전재산을 공덕으로 남기고 어딘가의 사찰로 홀연히 떠난 중생의 출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가 세속의 모든 짐을 내려 놓기까지 겪었던 고통과 번뇌의 시간이 인생의 굳은살로 박히지 않길 봉녕사의 영험한 기운을 빌어 기도했다.

우리 모두는 굳은살 같은 아픔을 안고 산다. 이 아픔이 덧나지 않도록 각자의 삶을 잘 다독일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봉녕사를 찾는 이유기도 하다.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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