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조순미씨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증거” 울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혐의를 받는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가 선고 결과에 대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주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12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인정 사례는 피해를 입은 사람의 지원을 위해 국가가 피해구제 차원에서 인정기준을 순차적으로 완화한 것"이라며 "이 같은 피해판정은 본질적으로 폭넓게 피해자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인정에 엄격한 증명력을 요구하는 형사사건에서는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시험과 연구결과를 종합한 환경부 종합보고서는 흡입독성 실험과 동물실험 역학조사를 통해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살균제 성분과 폐질환 천식 유발 악화에 관한 일반적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종합보고서 내용을 보더라도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기존 연구에 대한 추정이나 의견 제시한 것은 일종의 의견서"라며 "이 같은 추정을 기초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가 2002~2011년 제조·판매한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다. 

앞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은 2016년 1차 가습기 살균제 수사 당시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2018년 11월 시작된 2차 수사 끝에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 기업 관계자 30여명이 기소됐다.

휠체어를 타고 코에 호흡기를 걸고 나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판결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조 씨는 “이 제품을 써서 죽어 나간 사람 숫자가 어마어마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가”라며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증거인데 그 증거 조차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법부와 가해기업, 정부 모두 용서할 수 없다”고 강하게 문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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