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거짓말 정치와 민주주의 말살
트럼프의 거짓말 정치와 민주주의 말살
  • 성민호 기자
  • 승인 2021.01.12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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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취임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29,000회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 반복
워싱턴포스트(WP)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 지난해 11월 초까지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무려 2만 9천회 이상을 쏟아 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개월에 630건, 하루21건의 의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반복해 온 셈이다.(사진 : 유튜브 캡처)
워싱턴포스트(WP)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 지난해 11월 초까지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무려 2만 9천회 이상을 쏟아 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개월에 630건, 하루21건의 의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반복해 온 셈이다.(사진 : 유튜브 캡처)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아주 이색적인 인물이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미국을 수렁에 밀어 넣어 빠져나올 수 없을 단계에서, 그나마 운 좋게 미국 민주주의가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

거짓말을 일삼은 트럼프 정권의 종말은 12일 현재 겨우 8일 남았다. 120일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고 말한 그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거짓 정치에 종지부가 찍힌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가득한 트럼프 정권은 미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끝내 미국 민주주의 상징 연방의회 의사당에 폭도들이 난입, 사상 초유의 5명이나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그 세력은 결국 민주주의 가치를 시궁창에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는 언행을 보였다.

평화적 정권이양 절차를 폭력으로 저지하려는 시도와 그로 인한 가선은 미국 역사의 커다란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

* 트럼프 통치 전략 : 거짓말이 최대의 무기

트럼프는 지난 6일 워싱턴의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차기 대통령 공식 인증 절차를 밟기 위한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자 약 3만 명이 백악관 앞에 모인 가운데, 트럼프는 이 지지자들 앞에 나서 연설을 하며 의사당으로 가라고 부추긴 것이 발단이 되어 그 책임은 피할 수 었이 막중하다. 정권이나 공화당에서도 토임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탄핵 이야기가 들불처럼 치솟고 있다.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대통령이 공직에서 완전히 떠난다고 해도 탄핵 소추가 가능하다고 한다. 6일 트럼프는 2024년 재선에 도전해보겠다는 야심도 의사당 난입사건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아니 이미 그는 재선의 기회를 상실했다.

트럼프 정치의 본질은 거짓말과 가짜이다. 진실은 거짓말과 가짜 속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근거 없는 음모론은 과학을 무시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는 거짓말과 가짜 뉴스로 자신을 정당화 했다.

2020년 대선에서도 근거 없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패배를 명확히 인정하지 않는 우를 범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 부정선거라고 볼 수 있는 현상은 몇 몇 있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결과 전체를 뒤집을 만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임명한 자들을 통해 상황을 뒤집을 궁리에만 몰두했다.

트럼프는 남부 조지아 주의 고위관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재검표를 통해 자신의 패배를 뒤집는데 필요한 11,780표를 찾아내라는 녹음이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선거 결과를 조작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볼 수 있는 매우 악질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WP)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이후 지난해 11월 초까지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무려 29천회 이상을 쏟아 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개월에 630, 하루21건의 의 거짓과 부정확한 주장을 반복해 온 셈이다. 아마 트위터가 있어 간단하게 그러한 주장들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트위터는 결국 트럼프의 트위트 계정을 영구 정지시켰다.

트럼프는 거짓말만 한 게 아니다. 평온하던 미국을 양쪽으로 극명하게 분열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의 분열적 언행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입장이 다른 상대는 철저하게 공격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를 부정하지 않고,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약자와 소수파(minority)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그럼에도 콘크리트 지지층은 트럼프의 연설을 무조건 받아들였다. 트럼프는 지난 2016년 처음 당선 당시 트럼프는 내가 (뉴욕의 맨해튼의) 5번가에서 사람을 쏴도 지지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한 적이 있다. 바위와 같이 튼튼한 지지층의 열광이 트럼프에게 큰 힘을 보태주었다.

그 같은 폭주기관차를 막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의회의 역할이다.

공화당 내에서 그래도 양심적인 고() 매케인 상원의원은 우리는 트럼프의 부하가 아니다. 섬기는 상대는 국민이다. 대통령을 감시하는 역할이 있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호소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의 인기 앞에 겁먹고 거침없이 무릎을 꿇었다.

이들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대선 결과 불복 과정에서도 그의 인기 상승 모습에 취해 변변한 의의제기 한 번 하지 못할 정도로 심약했다. 오히려 그의 의기양양한 태도에 숨을 죽여 가며 충성심을 발휘, 대선 불복 전선에 발을 내디딘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 트럼프 못지않은 폭주 허용한 공화당 책임

제도와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치러진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민주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공화당은 트럼프와 결별하지 않으면 앞으로 그들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할 것이다.

트럼프는 인사권을 남용해가며,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장애물들을 정권에 끊임없이 추방했다. 특정 부문에 힘이 집중하는 것을 피하면서, 서로 억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이른바 체크 앤드 밸런스(check and balance)의 현저한 기능 저하는 민주 정치의 기능부조화를 초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진영이 대선 부정을 호소하며 제기했던 60여 건의 소송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법원은 기각 처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장만 있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희망을 걸었던 연방 대법원도 기각 처리했다. 연방 대법원의 법관 성향은 보수 성형이 무려 6명으로 총 9명의 법관 가운데 우세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자신을 밀어 줄줄만 알았던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도 트럼프의 손을 묶어 버렸다. 그만큼 트럼프는 자기주장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트럼피즘(trumpism :트럼프 주의)에 의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이겨내면서 붕괴를 간신이 면했다. 트럼프는 7400만 명의 득표를 해 처음 당선 당시 보다 1000만 명이나 더 표를 얻었다며 의기양양했다. 사상 초유의 많은 득표를 했다. 거기까지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도 역시 8100만 명이라는 역시 초유의 득표를 했다. 트럼프보가 약 700만 표 더 얻은 것이다. 미국에는 트럼프 지지자보다 바이든 지지자 더 많은 사실을 애써 무시한 채 지지자들에게 자기 과시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트럼피즘, 그리고 그의 폭주는 미국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동맹관계를 한없이 해치고, 때로는 미국을 고립시키기까지 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과는 달리 미국을 처음으로 이미지 추락(Losing America's prestige Firstly)시켰다.

일방적이며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임기응변식 트럼프 외교는 세계의 큰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주도한 전후 국제질서 파괴에 트럼프는 있는 힘을 다 쏟아냈다. 트럼프는 미국에게는 물론 세계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독성이 강한 트럼프식 정치수작(political maneuvering)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독성은 아직 다시 살아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 다시 그 독성이 퍼질지 모른다.

트럼피즘으로 불리는 현상과 그 독성을 디톡스(detox)해가며 민주주의의 재건을 도모할 것인가가 조 바이든 정부의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분열이 심화되어 있는 미국 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트라이버리즘(tribalism, 부족주의)이다. 인종, 민족 정치신조 등의 차이에 따라 만들어진 집단에 틀어박혀 다른 집단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외통수 집단이다.

* 민주주의와 관용의 재건

트럼프 지지층뿐만이 아니라 민주당의 좌파 성향의 세력에도 다른 의견(異論)을 용납하지 않는 무관용 풍조가 만연하다. 하지만, 대립과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해 낙사는 것은 정치에 있어 기본적인 것이다. 집단주의 혹은 패거리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정치는 기능부전에 빠져든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지지층도 아우를 관용을 보여줘야 한다. 이미 바이든은 당선인 소감에서 나는 미국인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최고지도자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실천 능력이다.

사회의 융화, 융합을 꾀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미국 국민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건국의 정신을 떠올려야 한다. 미국은 아직 그 빛이 잃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사경제신문=성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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