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권위주의로의 과감한 방향 전환은 아시아, 중동, 남미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정치의 결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예언을 하는 정치학자는 곧 닥칠 것처럼 보이는 문명 전쟁이 아니라 증가하는 시민불안이라는 관점에서 21세기의 나머지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월드라이프 World Life 홈페이지 캡처)

“21세기 들어 일반 대중의 반대를 상쇄하거나 무의미하게 하기 위해 대담하게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로의 전환은 아시아, 중동, 남미, 그리고 실제로 민주주의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이르기 까지 정치의 결정적 특징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많이 읽힌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의 저자 헌팅턴(Huntington)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의 저자 후쿠야마(Fukuyama)21세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21세기 들어서자마자 지구촌은 권위주의가 정치적 특징으로 자리매김을 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관련 뉴잉글랜드 대학의 역사 및 이슬람학 교수인 하워드 브래스트(Howard Brasted)교수와 방글라데시 다카대학의 샤피 모스토파(Shafi Mostofa) 조교수는 19일 공동으로 알 자지라의 오피니언에 기고한 글에서 헌팅턴과 후쿠야마가 21세기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면서, 21세기 정치적 특징은 권위주의가 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21세기 국제 정치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브래스트와 모스토파는 거의 예외 없이, 전국적인 선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유권자들은 당파성과 이념적 양극화로 갈라져 극도로 양분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패자들은 자신들이 실제로는 승리자라고 주장을 하거나 또는 그 결과가 상대방에 의해 조작되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드문 일이 아니라 어쩌면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패거리(clique) 문화, 혹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일상화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을 선명하게 보고 있다. 광범위한 선거사기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민주당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퇴임을 해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스꽝스러운 부정선거 게임이 미국을, 그리고 그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메릴랜드의 래리 호건(Larry Hogan) 공화당 주지사가 공개적으로 한탄했듯이 오늘날 미국은 민주주의 세계의 지도자가 아닌 바나나 공화국으로 비칠 위험이 있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란 부패 등으로 인한 정국불안, 그리고 심한 대외 경제의존을 겪는 국가를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냉전 시대에 미국에게 휘둘렀던 엘살바도르, 그레나다, 니카라과,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남미 국가를 지칭하는 말로, 국가 최고 지도부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기업에 넘긴 결과로 경멸적인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이 생겨났다.

최근에는 중국이 자본과 군사력을 이용, 다른 나라의 항구나 시설들을 장기간 임대 통제하는 현실이 생겨나고 있어 중국판 바나나 공화국도 생겨나고 있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를 중국이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하자 대신아 99년간 임대사용하기로 하고 중국 오성홍기가 함반토타 항구에 휘날리고 있다. 부패와 중국식 제국주의가 만나 중국판 바나나 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 유권자들이나 법원 등에서는 조 바이든이 승리를 했다며, 인수위를 꾸려 진행을 해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끊임없이 트윗을 날리는 반민주적 이야기 뒤에는 수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계속 결집하고 있다. 한 신문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은 분열된미국이 되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201612올해의 인물에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를 선정했고, 표지에는 트럼프가 분열된 미국(Divided States of America)’의 대통령이라는 설명도 담았었다.

벨로루시와 미얀마의 최근 사례들 또한 지나칠 수 없다. 이곳 야당들은 민주적 선거의 메커니즘에 대해 이견을 치열하게 조율한다거나 혹은 일반 시민들에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 등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분열은 이제 마치 그것이 질서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에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가 2019년에 이슬람 소수민족을 적으로 간주하며 악마화한 캠페인을 통해 그의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정부의 두 번째 임기를 확보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타임지가 트럼프를 지칭한 최고 분열 조장자(Divider-in-Chief)’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식이 인도에서도 등장했다.

모든 곳에서, 여론의 변동성은 여론 조사자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정치학자들이 왜 그러는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찾아 나서는 것을 보는 일이 많아 졌다.

20세기의 저명한 학자들 가운데 문명의 충돌을 저술한 사뮤엘 헌팅턴과 역사의 종말의 작가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도 그들의 웅장한 이론을 통해서도 21세기 초부터 이렇게 무질서하고 자기(자국)중심적이며, 분열적인 정치가 탄생할 것을 아마 짐작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냉전이 종식된 후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인간 정부의 궁극적인 형태로서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언했다. 그의 견해로 소련의 붕괴는 공산주의가 명백한 대안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정치적 시스템으로서의 정치적 이슬람은 결코 소수 이상의 지지를 끌어낼 것 같지 않았다.

따라서 21세기는 미국의 보호 지도 아래 민주주의, 개인주의, 자유 시장의 단일 글로벌 시스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 질서의 설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반면, 1993년 헌팅턴이 떠올린 냉전 이후의 세계는 매우 달랐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외교 기사에서, 그는 국제 관계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전체 문명들, 특히 이슬람과 서방 사이의 갈등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팅턴은 문화와 종교의 실질적인 차이가 21세기를 문명 간 전쟁(inter-civilizational war)의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문명과 문명 사이, 즉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비정상적으로 작동, 불균형이 발생하거나 실패를 유발하는 폴트라인(Fault Lines)은 특히 '미래의 전선'이 될 것이다.

2020년이 끝나감에 따라, 이 웅대한 이론들 중 어느 것도 두 작가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이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2006년 초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가 그들의 동의 없이 사람들에게 부과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2020년이 되자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가 미국에 존재하는지 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트럼프 정권 하에서 미국은 최고의 정부가 아니라 최악의정부인 카키스트주의(kakistocracy : 극악정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했다.

카키스트주의최악의, 가장 자격이 없거나 혹은 가장 비양신적인 사람들이 패거리지어 운영하는 정부시스템을 말한다.

얼핏 보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론은 역사의 종말 보다 더 성공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미국의 9/11 비극, ()이슬람 표적에 대한 치명적인 외톨이 공격,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 세력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의 새로운 칼리프(caliphate) 선언, 그리고 서구 국가들에서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과 지위에 대한 폴트라인(fault lines)' 긴장들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 정말로 큰 충돌이 있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

헌팅턴이 2008년에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문은 국제 관계의 미래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표준 기준점으로 남아있었고, 지난 2년 동안 구글의 학술 검색 서비스인 구글스콜라(Google Scholar)에서 35천 번 이상 인용됐다.

문명 간의 분열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후쿠야마의 세계 체제뿐만 아니라 헌팅턴의 문명권의 응집력도 약화시켰다. 개방적인 토론, 법치주의, 책임 있는 정부와 같은 미국 세계 질서의 특징들이 침식되고, 서구 민주주의의 화폐가 점차 평가 절하되고 있는 반면, 극심한 종파 갈등은 무슬림 반()서방 연합이 즉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을 멀리하게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지배와 전쟁 기반의 전체 문명의 배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세계화와 그에 수반되는 포퓰리즘 반응의 부산물이다.

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수용해 온 신자유주의는 그들이 추진한 정책으로부터 가장 효과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등 불평등한 분배로 귀결시켰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표면상 그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묵인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산과 그것이 지속하는 세계체제에 효과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비록 다른 방법이지만, 전 세계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서구에서는 포퓰리즘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정부와 부패한 지배체제에 대한 우파적 불만의 근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종류의 포퓰리즘은 대도시 엘리트들과 다국적 아웃사이더들을 국가의 가상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주도된다.

남아시아에서 포퓰리즘은 종교적 소수자들을 단결과 발전에 대한 반민족적 장애물로 규정하는 하향식 담론에 빠져들고 있다. 모디의 인도와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의 스리랑카에서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정권에 대한 반대를 무디게 하고, 자신들의 권력 사용에 대한 헌법적 견제를 약화시키는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 위해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헌팅턴은 그의 문명의 충돌논문에 포퓰리즘적 차원을 결합시켰다고 인정받았지만, 그는 포퓰리즘이 취할 수 있는 궤적이 문명 간 적대감을 고조시키는 것만큼 국가 내 긴장을 조성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날 권위주의로의 과감한 방향 전환은 아시아, 중동, 남미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정치의 결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예언을 하는 정치학자는 곧 닥칠 것처럼 보이는 문명 전쟁이 아니라 증가하는 시민불안이라는 관점에서 21세기의 나머지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사경제신문=성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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