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인 통한 대출 중단, 비대면 신용대출도 종료
부동산 가격 상승 책임, 은행에 돌린다는 불만도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급증세를 잡기 위해 고소득자 등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9일부터 은행들도 대출 금리를 조정하며 신용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소재 시중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대출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시사경제신문 자료사진)


연말을 앞두고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급증세를 잡기 위해 고소득자 등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은행들도 대출 금리를 조정하며 신용대출 조이기에 들어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다시 강하게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주문하자 은행들이 대출상담사를 통한 대출을 중단하고, 비대면 신용대출의 주력 상품 판매를 종료하는 등 문턱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출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4일 금융감독원은 부원장보 주재로 부행장급인 시중은행 가계대출 담당 임원들을 모아 가계대출 관리 동향 및 점검을 위한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 10월과 달리 11월 가계대출 관리가 잘되지 않은 것 같다며 지난 9월 제출한 연내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반드시 지켜달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57조5,520억 원에서 666조9,716억 원으로 지난 11월 한 달에만 9조4,195억 원 급증했다. 10월 증가액인 7조6,611억 원보다 2조 원가량 많은 것이다.

특히 신용대출의 경우 금융당국이 지난달 13일 연봉 8,0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의 1억 원이 넘는 신용대출 등에 대한 규제를 예고한 뒤 규제 시행에 앞서 일단 받아 놓자는 가(假)수요가 몰리면서 4조8,495억 원이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4조1,354억 원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실패해 연내 총량 관리 목표 달성이 거의 불가능해진 2개 은행을 지목, 강하게 질책하며 개별 면담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2개 은행의 행장이나 부행장이 이미 금융당국에 소환됐거나 곧 불려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런 금융당국의 경고와 압박에 은행들은 가계대출 추가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이미 지난 10월 이후 신용대출 금리를 높이고 한도를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계대출을 조여왔다. 하지만 넘치는 대출 수요로 총량 관리에 어려움을 겪자 마른 수건 짜기식으로 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은 당장 이날부터 연말까지 대출상담사를 통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 대출 모집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대출상담사는 카드 모집인과 비슷하게 은행 외부에서 대출 상담창구 역할을 하며 은행과 차주를 연결해주는데, 이들을 통한 대출 신청을 당분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인 ‘우리 WON 하는 직장인 대출’ 판매를 오는 11일부터 중단한다. 하나은행 역시 조만간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에 대한 대출 한도를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압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대출 수요가 많아 대출한 것일 뿐인데, 정부는 기본적으로 은행이 공격적으로 대출을 해서 부동산에 돈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의 책임을 은행에 돌리는 격이라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달의 경우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규제를 예고해 가수요 급증을 자초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시중은행의 총량 관리 부실을 질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시사경제신문=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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