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남부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보다 공정한 발언권을 갖게 하고, 해로운 정책을 차단할 힘을 갖게 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요구는 묵살되어 왔다. (그래픽 : 시사경제신문)

런던 대학교의 인류학자로서 영국 왕립예술협회의 펠로우이며, 20175월에 출판사 펭귄에서 출간한 분열 : 세계 불평등과 해결책(The Divide: A Brief Guide to Global Inequality and Its Solutions)”이란 저서가 있는 제이슨 히켈(Jason Hickel) 박사는 지금이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사람들 대부분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 남부와 세계 북부의 불평등이 감소해왔다고 추측한다. 결국, 식민주의가 우리 뒤에 있고, 확실히 가난한 나라들은 점점 더 부유한 나라들에게 잡히고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확히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지구촌의 남과 북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1960년 이후 4배로 커졌는데, 이는 두드러진 차이 패턴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추세는 세계경제의 권력불균형(power imbalances) 탓이 크다.

간단히 말해, 부유한 나라들은 국제무역과 금융의 규칙을 정할 때 불균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종종 다른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그들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경제 정책을 관장하는 두 핵심 기관 중 하나인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권력 분포에 관한 한 이 문제가 더 뚜렷한 곳은 없다.

이러한 기관들의 대표성이 유엔 총회의 노선을 따라 모델링되거나 아마 인구에 따라 계산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은 상당히 비민주적(undemocratic)이다. 문제는 맨 위에서 시작된다. 세계은행과 IMF의 지도자들은 선출되지 않고, 미국과 유럽이 지명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내재되어 있다.

지금까지 무언의 합의에 따라 세계은행 총재는 항상 미국 출신이고, IMF 총재는 항상 유럽 출신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기관들의 투표권은 부유한 나라들에게 너무 심할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미국은 모든 중요한 결정에 대해 사실상의 거부권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G7과 유럽연합과 함께 두 기관에서 투표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85%를 함께 차지하는 중하위권 국가는 소수민족이다. 인구 비율을 보면, 1인당 투표 배분을 보면 불평등이 정말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 세계 북부의 평균적인 사람이 갖는 모든 표에 대해, 전 세계 남부의 평균적인 사람은 투표의 8분의 1밖에 없다(남아시아 평균은 투표의 20분의 1밖에 없다). 이 정도로 불균형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문제의 제기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세계경제 정책 입안에 대한 소수의 통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종 불균형도 분명히 존재한다. 평균적으로 유색인종의 투표는 상대국의 일부분만 가치가 있다. 만일 어느 특정 국가에서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격분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종차별정책(apartheid)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의 한 형태가 오늘날 국제경제 거버넌스의 바로 핵심에서 버젓이 작동하고 있으며, '노멀(Normal)'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국가 간 차이가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방글라데시와 나이지리아를 택하라. 둘 다 영국의 식민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오늘 영국인의 투표는 방글라데시인의 투표보다 41, 나이지리아의 투표보다 23배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21세기다. 식민 통치가 끝난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이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정책은 변화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세계은행과 IMF의 투표 권력을 특징짓는 불평등은 식민지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이 기관들은 1944년에 설립됐다. 당시 식민지였던 나라(인도처럼)는 불평등한 조건으로 제도에 통합되어 식민지에 종속됐다.

다른 식민지들은 독립 후, 어떤 경우에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관들은 식민주의 하에서 설계되었고, 그들은 특성상 식민주의로 남아있다.

세계은행의 의결권은 각국의 금융지분에 따라 배분된다. IMF에서는 주로 국내총생산(GDP)에 따른 것으로, 한 나라의 시장 개방성(market openness)' 어느 정도 고려한다.

그 결과 식민지 시대에 부자가 된 나라들은 세계 경제의 규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불균형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불평등은 불평등을 낳는다(Inequality begets inequality).

이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합법적인 접근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더 큰 경제가 세계경제와 관련된 결정에 더 많은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함의를 생각해 보라. 원론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어떤 국가 정치 시스템에서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투표권을 가져야 하고, 경제 정책 결정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금권정치(plutocracy)는 세계은행과 IMF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투표 권력(voting power)의 불균형은 왜 세계은행과 IMF가 지난 40년 동안 세계 남부 전역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부과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민영화, 긴축, 그리고 강제적인 시장 자유화에 초점을 맞춘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수익성 있는 이윤기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1980년대와 90년대 동안 그들은 소득 감소와 빈곤 증가를 야기 시켰으며,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간의 경기 불황과 스태그네이션(stagnation)를 촉발시켰다.

오늘날까지 그들은 영아 사망률과 산모 사망률을 포함한 건강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다. 그런 망국적인 정책은 민주적 원칙 아래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정치 지도자들의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긴 있었다. 최소한 이들 기관의 지도자들은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선출돼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리고 그들은 중요한 결정에는 다수 주주뿐만 아니라 다수 회원국이 필요로 하는 이중 다수(double majority)” 제도를 요구해왔다.

이중 다수제도란 과반수 득표는 두 개의 별도 기준에 따라 과반수를 득표해야 하는 투표제를 말하는데, 이 메커니즘은 일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모든 조치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입법기관에서는 입법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 형태로 이중다수 요건이 존재한다.

이는 전 세계 남부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보다 공정한 발언권을 갖게 하고, 해로운 정책을 차단할 힘을 갖게 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요구는 묵살되어 왔다.

그러나 올해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는데, 그는 넬슨 만델라 재단에서 강연을 하면서 세계은행과 IMF에서 투표권의 민주적 개혁을 요구했다. 이것은 역사적인 개막을 의미하며, 운동가들은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더 공평한 세계경제를 경험하고 싶다면, 경제 통치 기구를 탈식민지화(decolonising)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사경제신문=김우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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