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가수 허준하, 약국 아닌 무대에서 ‘인생역전’
약사 가수 허준하, 약국 아닌 무대에서 ‘인생역전’
  • 원금희 기자
  • 승인 2020.06.29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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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울림과 위로’가 되는 노래 남기고 싶어

부유한 집안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자작곡 만들어 부를 정도로 노래에 빠져
명문 중ㆍ고등학교 거쳐 약대 입학

졸업 후 약사와 가수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
포기할 수 없는 가수의 꿈을 안고 수십 년 가슴앓이
환ㆍ진갑 훌쩍 넘어 발표한 신곡 ‘연적’, ‘가수 허준하 이제는 대중 곁으로’
최근 허준하는 약사와 가수라는 숙명 같은 삶에 도전할 신곡 ‘연적’을 발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약사 허준하로서 고객과 건강에 대한 상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원금희 기자
최근 허준하는 약사와 가수라는 숙명 같은 삶에 도전할 신곡 ‘연적’을 발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약사 허준하로서 고객과 건강에 대한 상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원금희 기자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공군대위 출신 약사가수 허준하가 약국 아닌 무대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선다.

1955년 전북은행 설립자인 아버지와 현모양처 어머니 사이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허준하는 넉넉한 집안에서 부러울 것 없는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전주 북중학교를 수석 입학하고 전주고를 나와 성균관대학교 약대에 진학했다. 그를 포함한 4형제 모두가 전주고 출신으로 공부 잘하는 DNA를 타고난 재원들이었다. 더욱이 가난이란 두 글자를 모르던 학창시절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명문 중ㆍ고등학교와 대학교 입학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다들 모범생 뱃지를 달았다.

형제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소질을 보였다. 자작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그중에서도 허준하의 노래 실력이 가장 특출나 중학교 3년 내내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음악적 재능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명문여고를 졸업한 인재였다. 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과 예술적 감각을 가졌지만 엄한 가풍 탓에 당신의 재능을 묻어둔 채 신부 수업에만 전념하다 은행에 근무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살림과 육아에 바쁜 평범한 주부로 생활했다.

중학교 3년 동안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렀던 허준하는 전주고 시절부터 타고난 끼를 조금씩 발산하기 시작했다. 남진, 나훈아 노래를 따라 부르며 트로트에 심취했고 기타 연주에도 공을 들였다. 그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인 70년대 초반 서울대에 합격하려면 예비고사와 본고사 두 번의 시험을 치렀다. 서울대를 꿈꾸던 그는 경험 삼아 친한 선배의 법대 시험길에 동행해 서울에 올라왔다. 마침 시험 기간 중 남진 리사이틀이 열렸고 허준하는 시험을 앞둔 선배를 데리고 공연장을 찾을 정도로 노래에 빠져있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선배 인생의 방향을 가를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공연장을 찾은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부터 트로트는 내 인생의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던 가정환경에서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별 뜻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은 허준하. 한낮의 빛처럼 풍요로운 그의 삶은 가수로서의 간절함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렇게 허준하는 자신의 형제들과 동문들이 그랬듯이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약대에 입학했다.
 

◆가수라는 두 글자를 떼지 못한 삶... 약사와 가수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

허준하는 전주 본가를 떠나 서울에서 시작한 대학생활에서 엄격한 가정환경의 경계를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감춰뒀던 끼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무교동에서 통기타를 치며 트로트 공연을 했고 TBC가요경연대회에도 참가했다. 포크송, 팝송이 대세였던 그때에도 허준하는 한결같이 트로트에 매료돼 있었다. 하지만 일탈을 모르던 그는 약대생의 본분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울타리 안에서만 서성거리며 노래의 갈증을 풀어나갔다.

약대 졸업 후 공군에 입대해 복무 중인 허준하는 어느날 700명 동기생들이 바라보는 무대에 올라 트로트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우레와 같은 갈채가 터져나왔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 허준하는 가수의 굴레를 운명처럼 받아드렸다. 그 시절 군악대 가수로 이름을 날린 허준하는 직업 가수로서의 길을 찾아 오디션에 도전했다.

“그 좋은 직업을 가지고 왜 가수를 하려고 해요, 그냥 약국이나 하세요” 오디션 관계자들을 비롯해 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약사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가수 허준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의 인생에서 약사와 가수는 ‘연적’ 같은 애증의 관계가 됐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수라는 두 글자를 떼지 못한 허준하는 개업 전 남대문 ‘초원의 집’ 인근 약국에 취직했다. 당시 초원의 집은 길옥균, 김정구, 남진, 석현 등 연예인들의 무대가 열리는 공연장이었다. 허준하는 그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가수로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이곳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안정적인 직업이 있는데 왜 가수를 해요. 그냥 약국이나 차리세요” 빛과 그림자 같은 약사와 가수의 갈림길에서 그는 또다시 발길을 돌렸다.

1983년 허준하는 이태원에 약국을 차렸지만 가수라는 이름표는 평생 약사로서의 그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다. 3년 뒤 자작곡 ‘영아생각’을 발표했다. 동료 주현미와 함께 약사회 심장병 어린이 돕기 음악회, KBS라디오 대담프로에도 출연했다. 늘 허준하는 약사와 가수 사이에서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꺼질락 말락 희미한 불씨와 같은 가수의 길에서 허준하는 91년 지인의 소개로 LP앨범을 출시하며 가요 TOP10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명맥만 유지한 가수 생활을 잠시 접은 허준하는 1994년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친구를 따라 부산에 내려가 기업형 약국을 차리며 사세를 확장했다. 그렇게 몇 년 후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IMF의 거센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다시 서울에 올라온 그는 사업 실패의 잔재를 정리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사랑합니다 어머니’라는 듀엣곡을 발표하며 가수로서의 삶에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최근 허준하는 약사와 가수라는 숙명 같은 삶에 도전할 신곡 ‘연적’을 발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그동안 가수 허준하가 발매한 앨범. 사진=원금희 기자
그동안 가수 허준하가 발매한 앨범. 사진=원금희 기자

◆신곡 ‘연적’을 통해 가수 허준하로서 대중에게 ‘울림과 위로’ 선사

공군대위 출신 약사 가수 허준하는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부유한 집안에서 별 탈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며 소위 말하는 꽃길을 걸어왔다. 명문 중고를 거쳐 약대에 진학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 가수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지만 주위의 반대와 연예인의 길을 허락하지 않는 집안 환경, 대담하지 못한 성격 등을 핑계로 이 길에 매진할 수 없었다.

약사라는 직업상 대부분의 시간을 약국에 얽매어 가수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자주 허락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커지는 노래에 대한 갈증으로 항상 목말라 했다. 약사와 가수를 병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생업을 위해 약사도 포기할 수 없었고 가수로서의 삶도 버릴 수 없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드문드문 앨범 발매를 멈추지 않았다. 가수의 꿈을 품고 어느덧 반세기를 지나왔다. 그래도 노래에 대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큰 흔들림 없었던 내 인생에서 가수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 2017년 발매한 앨범 타이틀곡 ‘연적’은 약사와 가수로 살아온 사연을 오롯이 담아낸 인생곡이다. 까까머리 중학생때부터 환ㆍ진갑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 트로트에 매료돼 가수의 그늘에서 주변을 맴돌았다. 이제 약사 허준하를 내려놓고 가수 허준하로 인생의 봄날을 찾고 싶다.

평생의 가슴앓이였던 가수 허준하로서 대중에게 ‘울림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노래로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바람 이었나요/ 당신하고 함께한 세월/ 사랑이라 믿어왔던 내 마음은/ 당신 앞에 초라해지네/ 나만이 존재하던 당신의 가슴/ 어떻게 다른 이를 사랑하는지/ 아픈 상처 꼭 동여매고/ 눈물로 살아야 하나/ 사랑의 괴로움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가야 하나.

허준하가 여린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음색으로 부른 ‘연적’의 노랫말이다. 그가 목 놓아 부른 가사말 중 ‘당신하고 함께한 세월’은 그토록 바라던 ‘가수 허준하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약사 가수 허준하가 경영하는 약국. 사진=원금희 기자
약사 가수 허준하가 경영하는 약국. 사진=원금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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