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무게만큼 사회환원...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 동참

배고픈 시절 고향을 떠나 답십리 한 양복점에 취직
어깨 너머 배운 기술로 자신만의 노하우 쌓아
뛰어난 기술이 입소문 타고 고객이 고객을 소개

가업 잇는 아들과 함께 ‘맞춤정장의 브랜드화’ 도전
‘일체형 피팅시스템’ 개발로 체형별 장점 부각시켜
재능 기부 통해 사랑과 배려, 행복의 기쁨 누려

박수양 명장. 사진=원금희 기자

[시사경제신문=원금희 기자] 1968년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고향을 떠나 답십리 한 양복점에 둥지를 튼 17살 청년 박수양은 오늘날 명장의 반열에 올라 인생역전의 꿈을 이뤘다.

중학교 졸업 후 농사일을 거들던 박 명장은 꿈도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차비만 손에 쥔 채 서울 답십리 외삼촌댁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했던 당시 그는 외삼촌의 소개로 집 앞 양복점에 취직했다. 월급은커녕 밥만 먹여줘도 고마웠던 시절 그는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어깨 너머로 짬짬이 양복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누구도 그에게 순순히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낮에는 잡무에 시달려 시간이 없었다. 그는 모두가 퇴근한 저녁부터 동이 트는 새벽까지 자르고 붙이고 꿰매고 어깨너머 배운 기술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박 명장은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싶었다. 답십리를 떠나 여러 군데의 양복점을 거치면서 또다른 패턴의 기술을 익혔다. 여기에 자신만의 기술을 접목해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군에 입대하게 됐다.

군 제대 후 2년 박수양 명장은 마침내 답십리 사거리에 자신의 양복점을 차렸다. 그렇게 답십리는 그가 반세기 넘는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한 제2의 고향이 됐다. 1970~ 1980년대 초는 맞춤정장의 전성시대로 박 명장은 눈 코 뜰새 없이 일했다. 1980년대 후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기성복이 등장하며 맞춤정장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기성복을 찾았고 그들의 부모도 이 흐름에 동승했다. 기존 양복점들의 폐업과 이직이 늘어났다. 박 명장도 매출이 떨어지면서 사업의 위기를 맞았지만 고객의 신뢰와 자신의 기술을 무기로 힘든 시련을 잘 견디고 버텨왔다.

▲2010년 한국맞춤양복 기술경진대회 대상 ▲2014년 아시아 고베 양복기능경진대회 대상 ▲2016년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위촉 등은 어려운 시절 박 명장을 지켜준 훈장이 됐다.

현재 박수양 명장의 아들 박승필 씨는 아버지를 도와 ‘맞춤정장의 브랜드화’에 전념하고 있다. 박 군은 연세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교사를 꿈꿨다. 어느날 아버지와 함께한 국제 패션쇼에서 그들의 2세가 부모님의 직업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키는 모습을 계기로 가업 승계를 결심했다. 50년 내공 아버지의 기술에 자신의 젊은 감각을 더하면 새 패러다임을 갖춘 맞춤정장이 제작될 거라 자신했다.
 
박 군은 젊은층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양복점 운영에 주력했다. ‘엘부림 양복점’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아버지가 가진 모든 기술적 노하우를 구체적으로 체계화 했다. 명품 양복과 최신 트렌드를 분석했다. 굴신체, 반신체, 비만체 등 수많은 손님들의 다양한 체형을 연구하고 연령대별 사이즈와 선호하는 디자인을 체크했다. 이 조건들이 각각의 체형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패턴 작업에 치중했다. 이를 통해 가봉 없이 정장을 맞출 수 있는 ‘일체형 피팅시스템’을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전수 받은 기술 외에도 2016년 평택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명장지도 맞춤양복 제작 과정과, 2018년 명품양복 제작과정을 공부했다.
 

박수양 명장은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최종 5위를 차지한 트롯 신동 정동원(왼쪽)군의 준준결승, 결승전 무대의상을 제작했다. 사진=엘부림 양복점 제공

◆미스터트롯 정동원과 유명 연예인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인이 찾는 양복점

지금 대한민국은 트롯 광풍에 싸여있다. 이 중심에 선 ‘미스터트롯’은 트롯 전성기를 이끌 차세대 스타를 발굴하는 신개념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오디션 결승전에서 최종 5위를 차지하며 전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13살 트롯 신동 정동원 군. 박수양 명장은 정 군이 준준결승 및 결승전에서 입었던 무대의상을 제작했다. 특히 정동원 군이 결승전에서 선 보였던 베이지색 더블정장은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명장의 맞춤정장은 이미 연예인들과, 체육인, 법조인, 교육인, 정치인 등 유명 셀럽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입소문을 타고 농구감독 허재, 골프 선수 양용은, 배우 정보석, 김보성, 이민우, 바리톤 김동규 등이 이곳을 드나든다. 지난해는 독일 뮌헨 교향악단 단장이 찾아와 연미복을 맞췄다. 올 초에도 방문한 단장은 내년 한국 순회공연 시 120명 전단원의 맞춤정장을 부탁할 만큼 박 명장의 기술을 최고로 인정한다.

또 박 명장은 양복점을 배경으로 방영됐던 KBS 주말드라마 ‘월계수양복점신사들’에 특별 출연해 자문 역할을 했다. SBS 드라마 ‘자이언트’, KBS2 드라마 ‘두근두근 달콤’ 출연진 의상도 제작했다. 이렇듯 박 명장의 양복점은 고객이 고객을 소개하는 경우가 전체 손님의 85%를 차지한다.

◆재소자, 다문화 가정, 종교인을 위한 나눔과 재능기부

박 명장은 양복점을 시작할 무렵부터 개척교회 목회자, 해외 선교사들에게 맞춤정장을 선물해왔다. 2004년부터 8년 동안은 재소자들에게 양복기술을 가르쳐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형편이 어려운 다문화 가정의 결혼 예복을 무료로 지어주는 등 성공의 무게만큼 사회에 환원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지천명(知天命)을 거쳐 이순(耳順)을 넘기고 종심(從心)에 다다른 박수양 명장은 “이만큼 인생을 살아보니 ‘사람은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양복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들과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고마움을 달리 갚을 방법이 없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미력하나마 내 작은 재능을 나누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누군가는 나눔과 베품 섬김의 삶이 어렵고 험한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배려와 행복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생의 나이테가 켜켜이 다져져 긍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량을 갖게 해준다.

배고픈 시절 먹고 살길을 찾아 무작정 상경한 동대문구 답십리는 어느덧 인생의 커다란 울타리가 됐다. 이곳에서 기술을 배우고 양복점을 열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하고 슬하에 둔 아들과 함께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술적 노하우를 쌓았다.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로 국가에서 인정하는 명장이 됐다. 아들은 ‘맞춤정장의 브랜드화’라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행스럽게 70세가 된 지금도 건강이 허락해 고객과 소통하며 그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있다. 늘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는 후배양성과 양복산업 발전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다.

맞춤양복은 품위와 인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작품이다. 명장의 자부심으로 고객이 돋보일 수 있는 작품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박수양 명장과 아들 박승필 씨가 운영하는 엘부림 양복점 전경. 사진=원금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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