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경제신문=김종효 기자] 이승환의 말에 따르면, 그는 10집 발매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앨범에 막대한 자본과 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앨범과 공연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 본인 표현으로는 “가장 충격적으로 망했다”. 지방 공연에서 일부 기획자들이 행하는 도를 넘은 마케팅에 가수를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 신두철 조명감독이 그를 다시 무대 위로 불렀고, 향수병인듯 그는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왔지만.

본인 스스로 가수의 커리어가 추락했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이승환은 다시 일어서려 했다. 그래서 앨범명을 ‘Fall to Fly’, 비상을 위한 추락으로 지었다. 

2015년 2월 26일, 뮤지션 이승환은 “오늘만큼은 음악으로 증명하고, 증명받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했던지, 이날 이승환은 정규 11집 앨범 ‘폴 투 플라이(Fall to Fly)-前’의 음악성을 인정 받아 제 1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서정민 선정위원은 이 앨범에 대해 “지치지 않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더 나은 사운드를 향한 집념으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 결과물은 요즘처럼 반짝 흥행을 노리는 디지털 싱글 시대에 더욱 빛난다”고 호평했다. 또 김성환 선정위원은 “20년간 꾸준히 지켜왔던 사운드 메이킹과 프로듀싱에 대한 고집 센 '장인정신'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한동안 그의 음반에서 조금 놓쳐왔던 '좋은 멜로디의 힘'을 되살리면서 2010년대에 걸맞은 안정된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의 경지로 그를 옮겨가게 했다”고 평했다.

 

“11집이 성공하지 못하면 12집도 어렵다”고 했다. 이승환에게 있어서 성공은 단지 음원 순위나 앨범 판매량이 전부가 아니었다. 음악성으로 인정 받은 이승환은 오랜 작업 끝에 자신의 데뷔 30주년인 지난해 정규 12집 ‘Fall to Fly-後’를 발매했다. 녹음기간 포함, 2013년부터 시작된 ‘Fall to Fly’는 2019년에야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있었다.

이승환은 ‘Fall to Fly’의 결실을 공연으로 맺고자 했다. 별다른 무대장치나 연출 없이 오로지 ‘Fall to Fly’ 앨범의 곡들과 미수록곡을 부르는 공연을 기획했다. 

2월 8일과 9일 양일간 서울 우리금융아트홀에서 ‘2020 이승환 Fall to Fly’ 공연이 열렸다. 이승환은 “연출·기획에 지쳐 보컬리스트로서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음을 자책하며 만든 공연”이라고 겸손하게 설명했다. 사실은 “촘촘하며 유려한, 고집스럽게 우아한 집중과 집착을 거듭하는 고통과 환희의 순간”인 이승환 최고의 명반 ‘Fall to Fly’가 탄생하는 녹음 현장으로 초대하는 콘셉트였음에도 말이다. 이승환은 그때 당시로 돌아가고자 했다. 공연 내내 앉아있던 의자도 ‘Fall to Fly’ 앨범 녹음 당시 사용하던 것이었고, 공연장도 ‘Fall to Fly’ 앨범의 첫 쇼케이스를 한 곳이었다.

음악에 집중을 한, 음악이 주를 이루는 공연이기에 이번 공연리뷰는 아티스트인 이승환의 공연 기획 의도에 맞춰 음악에 비중을 더 두려 한다. 

 

 

♬ 스트링 편곡, 2개의 마이크…음악적으로 힘 실은 공연

‘Fall to Fly-後’ 앨범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Fall to Fly(Feat. 곽이안)’가 공연의 문을 열었다. 고영환이 편곡한 이 버전은 초등생 곽이안 어린이와 이화여대 합창단의 목소리를 담아 앨범에 실려 밝고 희망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날 공연에선 보컬 없이 피아노로만 듣는 인스트루멘탈(연주) 버전으로 소개됐다. 

이어 등장한 이승환은 자신의 30주년에 발표한 12집 ‘Fall to Fly-後’ 첫 번째 트랙인 ‘30년’을 불렀다. 이승환의 미성은 이규호가 만들어낸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장 잘 전달하는 매개체다. 이승환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인 ‘세 가지 소원’이 떠오르는 몽글몽글한 사운드와 편안한 멜로디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세 가지 소원’ 역시 이규호의 곡이다.

이번 공연에선 스트링의 비중을 높였다. 그래서인지 다음 곡인 ‘나는 다 너야’의 경우 앨범 버전과 다른 편곡을 선보였다. 본래 앨범에 실린 트랙에선 브라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곡 자체가 70년대 사운드를 재현하려 빈티지 악기들을 사용, 뉴트로 스타일로 방향이 잡혔고, 브라스는 마치 이승환의 보컬과 대화하듯 추임새를 넣어주는 한편 복고 사운드의 감칠맛을 더했다. 색소폰 역시 곡의 환기점 역할을 하면서 듣는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버전은 브라스를 제외하고 스트링을 가미했으며, 색소폰 연주 부분은 기타 연주로 바꿨다. 이후 곡들인 ‘너에게만 반응해’, ‘Do the Right Thing’ 등에서 브라스 부분을 AR로 처리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편곡은 의도적으로 브라스를 배제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스트링은 브라스의 재미 대신 세련됨을 더했고, 부드러워진 곡 분위기는 가사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이승환은 실생활에서 쓰는 쉬운 단어들로 이뤄진 생활밀착형 가사를 미니 드라마처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곡에서도 영화관, 밥집, 돌아오는 길, 휴대전화 잠금화면으로 이어지는 연인에 대한 사랑을 예쁘게 표현했다.

이어지는 곡은 ‘너만 들음 돼’였다. ‘Fall to Fly’ 앨범을 통틀어 ‘너에게만 반응해’와 더불어 가장 청량한 트랙인 이 곡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승환의 마음이 가사에 오롯이 담긴 팬 송이다. 이승환은 이번 공연에서 마이크 2개를 번갈아 사용했다. 메인 보컬을 처리할 때는 공연용 노란색 유선 마이크를, 코러스를 비롯한 백보컬을 직접 소화하거나 담백한 보컬을 들려주고자할 때는 에코를 줄인 서브 마이크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운드를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너만 들음 돼’에서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이승환 앞에 왜 마이크 2개가 설치돼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 녹음실로 초대합니다…무대에서 더 빛난 음악적 역량

‘어른이 아니네’는 매우 ‘야릇한’ 곡이다. 그러나 저속하지 않다. 이승환은 “오랜 금욕생활을 야릇한 분위기로 보상받고 싶었으나, 은유적 표현이 많아 어려워하거나 의도를 잘 모르는 곡”이라 표현했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Fall to Fly’ 앨범 중 이승환의 작사 능력이 가장 돋보이는 곡으로 꼽는다. 여기에 떠다니는 비누방울을 톡톡 터뜨리는 듯한 사운드는 가사의 ‘무중력의 신세계’를 표현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승환은 깨끗한 가성에 비브라토를 더해 야릇한 느낌을 극대화했다. 저음과 가성을 오가는 이승환의 보컬 스펙트럼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어진 ‘너에게만 반응해’에선 오랜 음악적 동료인 정지찬과 이승환이 준비한 상황극이 큰 재미를 줬다. 이번 공연 콘셉트는 앞서 언급한대로 녹음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이었는데, 정지찬은 해당 곡의 앞부분을 녹음하는 이승환의 발음과 가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 음절의 표현력 등을 문제 삼으며 깐깐한 디렉팅을 해 폭소를 안겼다. “역시 곡이 안되는 데는 이유가 있어”, “그치? 난 또 그걸 사재기 탓으로 돌렸는데” 등 시의적절한 개그적 요소까지. 

원래는 ‘너에게만 반응해’ 역시 ‘어른이 아니네’만큼 야릇한 의미를 내포한 노래지만, 앞서의 상황극 탓인지 ‘배추배추’만 생각나 공연 종료까지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과는 별개로 녹음실을 옮겨온 듯한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여담으로, 모 가수의 녹음 과정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당시 디렉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렉터가 가수를 콘트롤하지 못한 채 원작자 의도와 다르게 녹음된 해당 곡은 결국 가수가 떠난 뒤 작업자들의 원망 속에 완성은 됐지만, 당연히 망했다.

‘Star Wars’는 본래 앨범엔 바우터 하멜, 유성은, 보컬그룹 러쉬(lush) 등이 참여하면서 정신없이 얘기가 오가는 형태로 표현된다. 따라서 공연에선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승환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구성을 코러스-이승환-팬들 구조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영어 부분을 노래한 섹시한 이승환의 모습은 덤. 덕분에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사운드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곡 전체에 장난기 가득한 장치가 많이 숨어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곡을 가장 완벽히 이해하고, 국내 최정상의 공연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승환이기에 가능했다.

 

 

♬ 오리지널을 대신한 목소리

‘비누’는 묘한 느낌의 곡이다. 곡이 후반부로 갈수록 사운드가 풍부해지는데, 끝까지 터뜨리는 부분이 없다. 계속 절제하는 사운드를 곡 끝까지 유지해 곡 종료 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앨범에선 ‘슈퍼스타K’ 출신으로, 독특한 음색을 지닌 가수 김예림이 이승환과 호흡을 맞췄다. 공연에선 코러스로 참여한 정미란이 이승환과 듀엣했다. 

반면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OST인 ‘Sorry’는 ‘비누’와는 달리 후반부 모든 사운드를 폭발시켜 곡의 기승전결이 매우 뚜렷하다. 배우 이보영이 목소리로 참여한 부분은 공연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대신했다.

이승환이 애착을 갖는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는 잘 알려진대로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에 대한 헌가다. 이승환은 이 곡의 깊이 있는 가사를 위해 도종환 시인에게 작사를 부탁했고, 제이슨 므라즈·셰릴 크로우·킹즈 오브 레온·가스 브룩스 등 뮤지션들의 앨범에 참여한 세계적인 스트링 편곡가 데이비드 데이비슨에게 스트링 편곡을 맡겼다. 데이비드 데이비슨의 웅장한 편곡과 평화의 나무 시민 합창단의 목소리는 후반부 곡의 울림을 극대화한다. 평화의 나무 시민 합창단 대신 팬들의 진심 깃든 합창과, 스트링 팀인 ‘소울스트링’(▲바이올린: 박승경(단장) 김예나 이수연 ▲2nd 바이올린: 신영은 박아름 ▲비올라: 이수아 정혜경 ▲첼로: 이서연)의 사운드 밸런스를 더 높여 만든 거대한 현악 스케일이 이날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 앨범 버전, 그리고 공연 버전

지극히 개인적으로, ‘Life's so Ironic’는 공연장에서 듣는 라이브보다 앨범 버전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에서 음정을 흩트리고, 음이탈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는 모습과는 달리 공연장에서 이승환은 이 곡을 ‘너무 잘 부른다’. 공연 전 목 관리를 철저히 하는 이승환이기에, 전날 일부러 과음하고 녹음한 이 곡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엔 괴리가 있다. 참고로, 어디에선가 이 곡을 소개하면서 ‘이승환이 데뷔 후 처음으로 랩을 했다’고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승환의 랩은 9집 수록곡인 ‘건전화합가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연에선 ‘Life's so Ironic’의 랩이 훨씬 자연스럽긴 하다.

‘내게만 일어나는 일’은 한동안 tvN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 편곡 버전으로 소개됐으나 이날은 오랜만에 앨범 수록 버전으로 공연했다. 여린 목소리에서 음악과 함께 고조되는 보컬,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절규하는 표현 등은 이승환을 대표하는 곡인 ‘천일동안’과 유사한 구조를 지녀 ‘천일동안’을 좋아했던 리스너들이라면 충분히 한 번에 빠져들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한다. 원곡에서 랩을 담당했던 MC메타가 자신의 랩 파트에만 무대에 올라 녹음실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만들어냈다. 스트링 사운드도 거의 최고조에 달해 관객들을 짓눌렀다.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와 완전히 극을 달리는 곡이 있다. 바로 ‘돈의 신’이다. 이승환이 3개월을 꼬박 매달려 국내에선 보기 드문 록오페라 사운드를 완벽히 구현했다. 연인원 40여명의 뮤지션들이 참여했으며, 성대모사로 유명한 배칠수는 ‘마’ 단 한 음절의 분량에도 흔쾌히 참여하기도 했다. 이승환은 100트랙의 코러스 트랙을 혼자서 모두 부를 만큼 곡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이승환 본인 역시 "3개월간 오로지 이 한 곡만 조이고 닦고 기름쳐왔다"고 말했을만큼 이승환의 노력과 실력이 이 한 곡에 집대성돼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곡으로 알려지며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후 포털사이트 검색어에서 갑자기 삭제돼 되려 더 큰 관심을 받게 됐다. 

앨범 버전에 실린 14명의 스트링 팀이 공연에선 8명으로 줄었지만, 박승경 단장 이하 ‘소울스트링’은 더 힘찬 사운드를 뽐냈다. 백그라운드 보컬 및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앨범에 동원된 목소리는 공연장에 모인 팬들, 즉 ‘드팩민’들이 냈다. 

 

♬ 미공개 트랙 ‘태양의 노래’, ‘어쩜’

이번 공연에선 ‘Fall to Fly’ 앨범에 실리지 못한 두 곡의 미공개 트랙이 공개됐다. 그 중 첫 번째는 ‘태양의 노래’로, 이승환은 “1년 반 전부터 작업해 12집 ‘Fall to Fly-後’에 수록하려 했으나, 앨범 전체가 말랑한 느낌으로 이뤄져 결국 수록되지 못했다”는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승환이 곡 자체를 ‘선동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표현했는데, 행진가 혹은 민중가요 등의 색이 깃들었다. 작사·작곡을 이규호가 했다고 말하기 전까진 절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간 여리여리하고 예쁜 곡을 써 온 이규호의 곡 성격과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승리한다/꺾이지 아니한다’ 등 힘찬 가사도 이규호가 쓴 것이라고 보기엔 의외다. 이 곡 뒤에 바로 이규호 작사·작곡의 감성 터지는 곡인 ‘그저 다 안녕’이 소개됐기에 확연히 대비된다. 이승환의 곡 소화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태양의 노래’는 이규호의 반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대곡이다. 원래는 영화 OST로 쓰일 예정이기도 했다고. 이규호의 반전 매력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 곡은 꼭 발매돼야 한다. 

또 하나의 미수록곡인 ‘어쩜’ 역시 마찬가지다. 이규호와 더불어 음악적으로 이승환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또 한 명의 작곡가 황성제 작곡팀에서 곡을 만들고, 이승환이 가사를 붙인 ‘어쩜’은 본래 듀엣곡으로 만들어졌으나 적절한 여성 보컬을 찾지 못해 미완성 상태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미완성이지만 곡은 ‘역시나’다. 이승환의 ‘통화남녀’를 작곡하며 음악계에 데뷔한 뒤 현재는 ‘전천후 음악천재’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음악인이 된 황성제는, 이승환의 보컬과 음악 성향을 가장 잘 아는 이 중 한 명이기에 그에게 딱 맞는 곡을 만들었고, 이승환은 그만의 감성으로 이 노래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코러스 구예니가 이승환과 듀엣을 해 아련한 곡의 느낌을 표현했다. 

 

 

♬ 얽힌 얘기들

이승환은 ‘10억 광년의 신호’를 두고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고 말했다. ‘가슴에 와닿는 곡’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가사를 쓰기 위해 이승환이 동분서주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력의 결과로 이승환은 멀어진 이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광년으로 표현했고, 수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음악적으로도 명곡이 탄생했다. 우주를 노래하듯 광활한 스케일에 짜임새 있는 구성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그 안에 이승환의 개성이 담긴 사운드가 빼곡이 담겼다. 데이비드 데이비슨이 스트링 편곡을 책임져 탄생한 거대하고 공간감 있는 현악은 국내 최정상 엔지니어인 고현정 기사, 그리고 윌 스미스·크리스티나 아길레라·자넷 잭슨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그래미상에 빛나는 세계적 엔지니어 랍 치아렐리의 믹스와 만나 정점을 찍었다. 이외에도 드럼에 맷 챔벌레인, 베이스에 맷 비쏘넷, 기타에 켄 송 등 세계적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참여했고, 영국 에비로드 스튜디오의 마일스 쇼웰이 마스터링을 맡았다, 미국 LA 헨슨 스튜디오와 내쉬빌 오션웨이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진행됐다.  

이런 음악적 성과와 별개로 이승환은 “(곡 작업)의도와는 달리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는 곡으로도 알려졌다. 세월호 사건을 환기시키는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승환에겐 ‘뮤지션은 세상의 아픔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차트 순위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그는 ‘10억 광년의 신호’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 받길 원했다.

앨범 버전과 같이 스트링이 유려하게 펼쳐진 ‘화양연화’와 달리 이날 첫 라이브를 공개한 ‘백야’에선 스트링을 좀 더 살려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본래 앨범 버전에선 이승환 본인이 보컬을 낮추고 음악을 살리는 사운드 밸런스를 선택했다. 이 곡의 편곡은 그 유명한 국내 최고의 현악 편곡가이자 영화음악인인 박인영이 맡았는데, 곡 전체에 강렬한 스트링과 이승환의 보컬이 어우러져 처절함을 노래한다. 공연에서 선보일 처음 당시엔 다소 스트링이 과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곡이 끝나고 난 뒤, 이승환은 스트링이 우는 ‘백야’가 아니라, 전체적인 균형이 잡힌 ‘백야’를 택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결정은 이번에도 옳았다고 여겨진다.

정규 공연의 마지막은 ‘Fall to Fly’였다. 시작에서 피아노 버전으로 잔잔하게 시작한 것과 반대 느낌의 이승환 버전이다. 곡 설명에는 이승환 버전은 ‘Fall’을, 곽이안 버전은 ‘Fly’를 노래한다고 돼 있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느낌이 있다. 반대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둘 다 ‘Fly’를 노래한다고 보여진달까. 특히 이승환 버전에서 ‘비상의 날개짓/그 날은 오죠’ 부분은 충분히 위로와 공감을 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Fall to Fly-後’ 마지막 트랙인 곽이안 버전을 공연 처음에 배치하고, ‘Fall to Fly-前’ 첫 번째 트랙인 이승환 버전을 공연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랍 치아렐리의 트렌디한 사운드 메이킹과 재미있는 추임새 사운드, 그리고 생활밀착형 가사가 돋보이는 ‘생존과 낭만 사이’, 필립 래시터의 몰아치는 브라스가 혼을 쏙 빼놓고, 직설적 가사가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Do the Right Thing’을 마지막 곡으로 전하며 이승환의 명반, ‘Fall to Fly’ 전곡과 미수록 두 곡을 라이브로 감상하는 시간은 마무리됐다.

 

 

♬ 이승환은 오늘도 증명한다, 음악으로.

이승환은 앞서 “주목받지도, 회자되지도 않았지만 ‘Fall to Fly’의 위대한 발걸음과 발자취를 우리들 만큼은 알았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아마 ‘드팩민’들은 이미 ‘어지러이 널려진 선들과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얼기설기 서있는 마이크 스탠드들의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승환이 오로지 음악으로 일군, 실력으로 이룬 성취를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화려한 편곡을, 놀라운 연출을 감행하지 않고 이날 공연을 이끌어간 이승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승환 역시 오랜 고민 끝에 이 공연을 꿋꿋이 진행한 것이다.

비싼 음향기기를 장만해도 아깝지 않다. 우리나라 음악계엔 스탠다드를 만들고 있는 이승환이라는 뮤지션의 고집이 있고, 집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사운드로 점철된 ‘Fall to Fly’ 앨범이 새로운 음악의 스탠다드를 세웠고, 다른 뮤지션들은 이 스탠다드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Fall to Fly’ 앨범이)잘 되진 않았지만, 음악적으로는 더 탄탄해지고 있다. 오로지 음악으로 보여 드리겠다”고 말해왔다. 자신의 말은 어떻게든 지켜내는 이승환은 지금 이 순간도 이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2015년 2월, 제 1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해 ‘음악으로 증명’했을 그 당시처럼, 여전히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메롱”이라고 말하면서.

 

 

○ Greatest Moment: 
1. 녹음실을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너에게만 반응해’ 콩트 타임
2. 폭풍같은 성량과 처절한 보컬이 스트링을 뚫고 나온 ‘백야’ 첫 라이브


○ ‘2020 이승환 Fall to Fly’ 셋리스트
Intro. Fall to Fly (Piano instrumental)
1. 30년
2. 나는 다 너야
3. 너만 들음 돼
4. 어른이 아니네
5. 너에게만 반응해
6. Star Wars
7. 비누 (duet with 정미란)
8. Sorry
9.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10. Life's so Ironic
11. 내게만 일어나는 일 (feat. MC 메타 of 가리온)
12. 돈의 신
13. 태양의 노래
14. 그저 다 안녕
15. 어쩜 (duet with 구예니)
16. 10억 광년의 신호
17. 화양연화
18. 백야
19. Fall to Fly
20(앵콜1). 생존과 낭만 사이
21(앵콜2). Do the Righ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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