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정당공천 제도 순기능보다 부작용 더 커
중앙정치인의 지방자치 왜곡으로 지방자치 무용론 대두
지역주민 의견 반영되는 지방자치 만들어 가야

부작용이 더 큰 지방선거 정당공천 제도를 폐지해 지역주민 의견이 반영되는 지방자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광진구 의회. 사진=시사경제신문

 

[시사경제신문=백종국 기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이 부작용을 남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정당공천을 폐지해 풀뿌리 민주정치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에서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논란에 대해 알아봤다. 백종국 기자

 

지난 617일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에서는 서울민주주의위원회정원에 관한 조례가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박원순 시장이 발의한 조례안이 시의회에서 발목 잡히기는 처음이었는데, 바로 그 처음이라는 사실 때문에 화제가 됐다. 처음은 서울시의회 의원 110명 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2명으로 정원의 93%나 차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시장은 깜짝 놀라 이후 628일 민주당 의총에 유례없이 참석했고 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장실도 방문해 의회의 예산심의의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지난 달 1일 조례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한 시의원은 지금껏 숙의예산안은 서울시가 딱지를 붙인 채로 넘겨 사실상 손을 못 대게 했다며 그동안의 불만을 쏟아냈다. 그의 말은 예산심의의결권을 가진 시의회의 권한을 서울시가 부당하게 제한해 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서울시의회가 박 시장의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드러낸 말이기도 했다.

시민들의 비싼 세금으로 운영하는 시의회가 어찌하여 견제해야 할 자치단체장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그런 가운데 시민들을 위한 시정이 제대로 이뤄질까. 더 큰 문제는 시의회만이 아니라 구의회, 군의회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자체장과 같은 당의 시의원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당선되었기 때문이 손꼽힌다. 시의회에서 여당 의원이 절대 다수라 여당과 야당 간 견제와 균형이 사라졌으며 시민에게 불리한 발의안이 통과되는 데도 견제가 거의 없다. 소수당 의원의 반대가 있어도 표결 대결에서 힘을 발휘 못 한다.

지방자치의 삼권분립이 입법 단계에서부터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회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고 소선거제 아래에서 그들이 공천한 시군구의원 후보들이 대부분 투표를 통해 지역의회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유력당의 공천을 받지 않고서 지역의회에 진출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많은 정당공천 제도

정당공천제는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과 공직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이라는 순기능에 비해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 심화, 정당공천을 둘러싼 금전 수수, 중앙 정치인에 대한 충성 서약, 각종 비리 만연 등 지방자치를 위협하는 역기능을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현재 정당들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않다. 하지만 현재 손에 쥔 기득권을 놓치고 쉽지 않기에 그에 대한 언급을 꺼려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제18대 대통령 선거 전부터 본격 논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통령 후보 시절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에 대해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조금 해소될 때까지는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당시 박근혜·안철수 후보도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정치적 유·불리를 이유로 정당공천 폐지 공약은 휴지조각처럼 되어버렸다. 이후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은 만개했으며 정당공천 폐기 논의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로 인해 정당공천의 지방자치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중앙정치인의 지방자치 왜곡으로 인해 지방자치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다시 수면에 떠오른 것은 지난 달 18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광역은 예외로 하더라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제는 모두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현재 상황에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부터였다.

진 장관은 앞으로 기초자치단체는 중앙정치로부터 연결을 끊고 지역 주민과 고민하면서 스스로 꾸려가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회까지 장악하려는 것은 지방분권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당공천제 폐지로 한국도 지방정부 발전을 위해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해야 지역도 살고 새 정치인물도 찾을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경제정의실천연합이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경실련 지방자치위원회는 지난 달 24일 지방선거 정당공천에 대해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은 더욱 심화되었고 중앙정치에 의해 지역주민의 의견 반영이 되지 못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왜곡되었다면서 8회 지방선거에서는 정당공천 폐지가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야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나 시민사회단체나 대체로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공감하는 편이다. 누구보다 그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지역 정당 제도가 없는 현재의 정당체제에서 풀뿌리 민주정치를 활성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정당공천 폐지는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강화하고, 기초단체장의 지역민을 위한 행정, 기초의회의 단체장 견제 기능을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대구 서구의회 오세광 부의장이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하라’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오세광 의원 페이스북

 

정당공천 폐지는 풀뿌리 민주정치의 출발

그렇다면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현실 정치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양천구 의회의 한 의원(더불어 민주당)은 전화 통화에서 기초의원 공천제에 대해 깊은 관심은 없지만 후보자 검증에 있어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당을 위해 기여했으면 사회를 위해서도 더 잘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며 공천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전직 구의원 김모씨(자유한국당 소속)기초의원 공천제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세세한 서류작성 절차부터 후보자들을 세세하게 검증한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으로는 정당에 속해 있어 지역주민보다는 위원장의 눈치를 보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국회 정문 앞에서 기초의회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며 1인 시위를 했던 대구 서구의회 오세광 의원(부의장)기초의원 정당공천으로 인해 집행기관에 대한 견제가 약하고 주민들을 바라보기보다는 당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서 국민들의 입장에서 이런 제도가 바른 것인지 자문하게 되고 의정활동의 동력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정당공천제로 인해 현실에서는 국회의원이 후보자의 90% 이상을 내리꽂는다고 표현했다.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고 충성해야 하므로 젊고 참신하며 전문성 있는 인재를 들이는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민들이 정당 소속 여부를 떠나 후보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투표로써 반영해야 한다면서 이런 성숙된 시민의식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소극적인 것은 무엇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당공천 폐지가 정당 발전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 기초선거 정당공천이 허용되자 시·군의회 의원들이 선거 후보자 공무담임권을 침해받았다고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공무담임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지금 당장 정당공천 폐지가 위헌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정당공천 폐지는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므로 재량 범위 내에서 입법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진녕 대한변협 대변인은 정당공천 폐지는 지방자치 정상화라는 목적의 정당성이 있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수단의 상당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합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천제가 없어지면 마치 지자체에 큰 혼란이나 문제가 있을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과장된 것이며, 설령 문제가 있다면 고쳐 나가면 된다는 게 공천제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지다.

도종환 의원 등 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및 정당공천폐지에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은 지난 5대통령은 공약사항인 정당공천 폐지를 이행해야 한다는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방에 준하는 자치분권을 약속한 바 있으나 자치분권 확대는 말뿐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중앙정부에서 막대한 재정과 권한을 갖고 지방정부를 통제하는 것을 쉽게 포기 못 하는 것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임기가 절반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는 실질적인 자치분권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재정과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해야 한다면서 그럴 때만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분권이 달성될 수 있으며, 풀뿌리 민주정치가 꽃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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