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다수의견, '불법원인 급여' 아냐
소수의견, 부동산실명제 무력화

대법원이 명의신탁 농지 반환 청구에 대해 부동산실명법에 반하는 판결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대법정=대법원 제공

 

[시사경제신문=백종국 기자]  명의신탁자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로 땅을 등기를 하였지만 명의신탁자의 상속인이 땅을 되찾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조희대)은 20일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연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종래 대법원 판례는 유지되어야 한다"며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소송은 A(명의신탁자)가 농지법상 처분명령을 회피하기 위해 B(명의수탁자)와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고 B에게 자신이 소유한 농지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침으로써 잉태되었다.

A가 사망함에 따라 원고가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A의 권리를 상속하였고, 피고는 B가 사망함에 따라 상속을 원인으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해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촉구했다.

원심(항소심)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위반하여 등기가 마쳐졌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종래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원고 전부 승소의 판결을 내렸다.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마친 명의신탁등기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명의신탁약정의 효력)에 따르면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며,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예외다. 제3자에게 무효조항이 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법 제746조(불법원인급여)에서도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다수의견(9명)으로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당연히 불법원인 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을 무효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신탁자로부터 명의수탁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루어지는 등기명의신탁의 경우 부동산 소유권은 그 등기와 상관없이 명의신탁자에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서는 이러한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정하였는데 만약 명의신탁의 경우 부동산 소유권이 명의수탁자에게 귀속된다면 제3자는 당연히 그 소유권을 기초로 한 권리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규정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동산실명법을 제정한 입법자의 의사도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부동산실명법 제정 당시 국회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명의수탁자에게 귀속시키는 법률안도 제출되어 있었으나 이는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법원인급여 부분과 관련해서는 "대법원 역시 민법 제746조의 ‘불법’의 개념을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불법원인급여 규정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거나 함부로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면서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고 협조한 명의수탁자의 불법성도 작지 않은데 불법원인급여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명의수탁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면 반대의견(4명)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에게 마친 등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이들은 "애초 판례에 의해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한 부동산 명의신탁은 우리 민법이 취하고 있는 부동산 법제의 근간인 성립요건주의와 상충될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며 부동산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과 그에 대한 판단의 사회·경제적 영향력, 판례가 변경될 경우의 파급효과 등이 고려되었다.

부동산실명법 규정의 문언, 내용, 체계와 입법목적 등을 이유로, ‘부동산부실명법에 위반하여 명의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한 이전 판례의 타당성을 다시 확인한 판결로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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