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세대 정치적 영향력 증대…‘실버 민주주의’ 화두

‘이념지향’ 탈피, 공감과 배려의 노인정치 시대 열어야

 

고령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은 고달프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 조정 등 고령세대를 둘러싼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인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JTBC 화면 캡처.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정치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평범한 말이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토크빌의 말대로라면 고령사회라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치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어야 할까. 고령화시대이니 마땅히 노인을 위한 정치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령사회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도 고찰하고 노인정치(Gerontocracy)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고령사회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정치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유권자 네 명 중 한 명이 60대 이상이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만 해도 40대가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은 그 다음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전국 226개 시·군·구 중 60세 이상이 30%를 넘는 지역은 110곳으로, 2014년 90곳에서 20곳이 늘었다. 그런가 하면 20·30·40대를 합친 유권자보다 60세 이상 노년층이 많은 곳도 전국적으로 40%를 넘었다. 60대 이상 노년층이 선거 판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령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지구적인 현상이다. 정치·사회적 중심이 고령세대로 이동하면서 각 분야에서 실버 민주주의의 양상도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실버 민주주의는 ‘고령대국’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다.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세대 등 노년층의 정치적 목소리가 정책 결정을 좌우한다는 뜻이 담겼다.

실버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노인친화적인 정책이 양산되고 있다. 실버 유권자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이해가 걸린 복지·일자리 문제에 민감하다. 연금이나 의료 같은 이슈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오른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실버 데모크라시’의 저자인 일본의 정치학자 우치다 미쓰루는 실버 민주주의의 특징적 단면을 이렇게 요약했다. “21세기에는 ‘납세자 데모크라시’에서 ‘연금수급자 데모크라시’로 민주주의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

연금수급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뜨거운 이슈다.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 154만 명이 월 최대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월 25만원에서 5만원이 올랐다. 그러나 하위 20%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역전방지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 하위 20% 기초연금 수급자가 월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되면 그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하위 20∼70%의 기초연금 수급 노인보다 소득이 더 많아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소득인정액이 저소득자 선정기준액(5만원)에 근접하면 10원 단위로 최대 4만6250원의 기초연금액을 감액하도록 한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양면성이 있다. 정부의 이 같은 기초연금 정책에 대해서도 반응은 갈린다. ‘보편복지’ 성격이 짙은 아동수당에 견줘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만6세 미만이면 소득·재산에 관계없이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그동안은 상위 10% 고소득 가구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개정된 ‘아동수당법’에 따라 올해 9월부터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만7세 미만까지 확대된다. 이를 두고 노인에게도 아동수당처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줘야 형평성에 맞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 통계국이 발표한 ‘늙어가는 세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050년이 되면 35.9%에 이르러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고령국가가 된다. 인구구조가 노인은 많고 청년은 적은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해가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 이슈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노인 기준연령 조정은 연금지급 연령, 정년 연장 등과 긴밀히 맞물려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다. 정치권은 노인 표를 의식해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할 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실버 민주주의요 노인정치다.

우리나라도 이제 실버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정치’가 화두다. 노년층의 정치세력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직된 정치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령화의 맥락에서 민주정치의 현재를 살피는 것이 실버 민주주의의 요체다. 정치권은 선거공학에 휘둘려 노인정책을 왜곡해선 안 된다. 유력한 유권자 집단으로 떠오른 실버세대 또한 자신의 정치적 에너지를 자의적으로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

일본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4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1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노년층은 그런 ‘광속의 변화’를 어떻게 감당해 왔는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노년세대는 ‘시니어 시티즌’으로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노인정치는 바람직한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노인정치가 ‘이념의 정치’와 동의어가 돼선 안 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가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는 ‘혁신’이 키워드가 돼야 한다. 합리적인 노인정치가 합리적인 노인정책으로, 다시 합리적인 사회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책무가 노년세대에 있다.

실버 민주주의, 나아가 노인정치의 미래는 수의 논리가 아니라 공생의 논리에 달려 있다. 노인정치의 진정한 미덕은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노인들은 자신이 그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없는 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도 있다. 큰 과실을 다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이다. 그런 공감과 배려의 노인정치가 꽃필 수 있다면 우리에게 고령화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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