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 디지털 정보화 수준 정보취약계층 중에서도 ‘최악’

디지털 격차 사회갈등 촉발 우려…‘디지털 포용’정책 필요

 

서울의 대형 백화점내 복합영화상영관 CGV에서 한 고객이 스스로 발권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종면 기자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필사(筆寫) 문화에서 인쇄문화로의 이행이 15세기 서구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구텐베르크는 1455년 독일 마인츠에서 성경을 금속활자로 인쇄해 펴냈다. 그 이전에는 성경 한 권을 손으로 베끼는 데 3년이 걸렸다. 그런데 구텐베르크 이후에는 그 시간에 180권의 성경을 인쇄해 낼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탄생한 성경과 함께 활자문화는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금속활자본 성경이 보급된 15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충격을 뒤로 하고 나타난 20세기 멀티미디어, 즉 다매체의 등장 또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같은 시대의 변화는 활자문화로부터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촉매제가 됐다. 근대 문명의 한 축을 담당한 종이문화와 책의 근간이 되는 아날로그 문화는 지금 디지털을 배경으로 한 인터넷 문화에 급속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전자 미디어의 시대다. ‘전자사막으로 불리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는 진작부터 예견돼 왔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현대 사회를 기계가 천사가 된 사회로 규정했다. ‘기계천사라는 말은 온당한 것인가. 로봇이 소설을 쓴다. 알파고로 대변되는 첨단 디지털 기술이 작가의 역할을 대신한다. 우리는 어떻게 기계라는 이름의 천사와 행복한 동행을 할 수 있을까.

시인 이원은 전자사막의 정경을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라는 자신의 시에 명료하게 압축해 놨다. “나는 세계를 연속 클릭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해가 떠오른다 해에도 칩이 내장되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고전적 명제가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금언 아닌 금언으로 바뀔 판이다. ‘생각클릭으로 대체되는 전복의 시대다.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디지쿠스로 진화하지 않고선 정녕 살아갈 수 없단 말인가.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 이제 그 끝 간 데 없는 공리공담은 접어두고 구체적인 우리의 현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때다. 주인공은 디지털을 앓는 노인이다.

노인들이 디지털 세상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디지털 약자인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적잖은 노인들이 디지털 소외(Digital Alienation) 혹은 디지털 지체(Digital Lag)라는 시대의 질병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디지털 영토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무인화·자동화가 대세다. 무인 주문기 키오스크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한다. 하지만 누구에겐 편리의 화신이 누구에겐 불편의 대명사. 아날로그 노인들 중엔 기계 작동의 쉽고 어려움을 떠나 기계 자체에 정서적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 중 하나가 금융이다. 디지털 금융이 확산됨에 따라 은행들은 오프라인 영업점과 자동화기기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현금·통장·종이가 없는 디지털 점포임을 내세운 곳도 있다. 최근 3년간 4대 시중은행이 출시한 상품 가운데 모바일로만 가입할 수 있는 모바일 전용 상품이 22%나 된다고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 지급결제보고서를 보면 60대 이상 노년층의 모바일뱅킹 이용률을 보면 13.1%로 젊은층에 비해 크게 낮다. 은행마다 디지털 사업부를 강화하고 온라인 상품에 우대 혜택을 주고 있다. 디지털 금융에 서툰 노인층은 불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최근 KB국민은행은 디지털 소외계층에 금융 편의를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다. 바이오 인증만으로 출금이 가능한 손으로 출금 서비스. 한 번의 손바닥 정맥 인증으로 통장, 인감, 비밀번호 없이 예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한 신개념 출금 서비스다. 노년층 고객에 편의를 제공, 디지털 격차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디지털기기 보유와 이용 능력, 활용도 등에서 드러나는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디지털 격차다. 디지털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지식이나 소득이 증가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지체돼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다. 디지털 격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4대 정보취약계층(장애인, 장노년층, 농어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63.1%선이다. 디지털 정보화 수치는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100%라고 가정, 일반 국민 대비 취약계층의 정보화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저소득층(86.8%), 장애인(74.6%), 농어민(69.8%)보다 열악하다. 노년층의 경우 퍼스널 컴퓨터(PC)·모바일 등 유·무선 정보통신기기, 인터넷 이용 등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접근 및 활용 수준이 매우 낮다는 얘기다.

디지털 격차를 발생하게 하는 주범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세대 간 디지털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0대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9.1%에 이른다. 70대 이상은 30%선이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단순히 스마트폰 보유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접근도에 비해 활용도가 현저히 낮다.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격차는 사회계층의 단절을 촉발하기도 한다. ‘디지털 문맹을 방치하면 세대 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디지털 환경은 점점 더 넓이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노인들이 고립된 섬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디지털을 적절히 읽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노년층에 대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디지털 소외를 넘어 디지털 포용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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