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줄었어도 활기와 유동인구는 여전
신림동 고시촌과 대비되는 ‘고급화’ 진행 중

노량진 고시촌은 조금 줄었어도 활기와 유동인구는 여전했다. 사진은 고시촌 먹거리 골목. 사진=백종국 기자

 

[시사경제신문=백종국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앞 노량진로 주변은 흔히 고시촌이라 불린다.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 유명 대입시학원뿐만 아니라 각종 공무원 시험을 위한 학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무원 추가채용이 늘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도 늘면서 이곳도 예전보다 활기를 띨 거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노량진이 침체됐다’, ‘노량진 상권이 다 죽었다는 소문과 기사가 반복해서 났다. 기자는 늦었지만 침체된 노량진역 일대의 상황을 독자들에게 전하려 그 지역 취재에 나섰다.

지난 430일 화창한 봄날, 대로변 포장마차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는 기자를 쳐다보았다. 아주머니에게 일대 상황을 물으니 지난 27일 경찰공무원 1차 필기시험이 끝나 한산한 편이다. 게다가 요즘은 배달을 많이 시켜 먹어 직접 들르는 손님이 적다고 울상을 지으며 답했다.

문 닫은 상점이나 임대를 내놓은 점포가 있는지 일대를 샅샅이 둘러보고 부동산소개소에도 들렀다. 일대 거리와 골목길을 둘러본 바, 문 닫은 상점은 없었다. 일부 언론 기사에는 권리금까지 포기하고 내놓은 가게 적지 않다고 했다.

수시로 사람이 들고 나는 인근 A 수제햄버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인근 장사 상황을 조심스레 물어봤다. 종업원은 업소마다 다를 것으로 보지만 우리 가게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오르고 있다. 음식 값은 몇 년째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근 B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러 통째로 나온 고시원 매물이 있는지 물으니 고시원은 매물이 커서 거래가 적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권이 죽었으면 고시원 매물이 나와 있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이곳 공인중개사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10년 전부터 경기는 안 좋았다며 특별한 상황이 없음을 내비췄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먹거리 골목에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학원 인근의 대로변과 뒷골목 모두 지난 달 취재차 들렀던 영등포역 주변 지하상가보다도 유동인구가 많았다. 2~3시간이 지나도 유동인구는 크게 줄지 않았다.

공시생들이 인근 찻집이나 골목길 점심을 마친 후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시험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등 학원가다운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젊은 공시생에게 다가가 말을 거니 서울이 집이라 자택에서 학원을 오간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인근 식당의 가격이 조금 오른 건 알고 있지만 저렴한 고시뷔페를 이용해 점심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노량진 일대 군데군데 산재한 공무원 학원 등 각종 학원들. 사진=백종국 기자

 

상인들, “노량진 상권 죽지 않았다!”

고시촌 뒷골목에 위치한 C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르니 그동안의 엇박자들의 이유가 조금씩 드러났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D 공인중개사는 격앙된 어조로 노량진 상권이 죽었다는 기사들로 인해 노량진 일대 상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경기 침체와 인강(인터넷 강의) 등으로 인해 씀씀이가 줄어 예전에 비해 10~15% 정도 빠졌다는 생각이지만 상권이 죽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량진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강남도 어려운 현실에서 노량진이 어려운 건 맞지만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서 꿋꿋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노량진에 점포를 구하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량진만큼 많은 유동인구를 지닌 곳을 보지 못했다 말합니다.”

그는 실례로 인근에서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E 타워 원룸 월세 임대가 모두 나가고 5년 이내 신축 원룸의 공실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현재 노량진 고시촌의 원룸 시세는 고시원 30~40만원 초반, 고시텔 45~55만원, 신축 50만 초반~65만원, 오피스텔 70만원이다. D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노량진에서는 비싼 원룸부터 먼저 동이 난다고 했다. 고시원 등의 싼 원룸은 좁고 불편하기 마련이라 공시생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생각하여 비싼 원룸을 계약한다는 것이다.

이 중 E 타워 원룸은 6평 크기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 원짜리로, 기자가 D 타워에 자리 잡은 F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직접 가서 손님인 척하여 문의한 결과, “공실이 없으니 세입자가 나갈 때까지 몇 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G 공인중개사로부터 들었다.

E 타워 원룸은 544세대로 동작구 등록 고시원과 고시텔이 지난 2015216개에서 지난해 67개로 줄었어도 그 줄어든 물량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단위 규모이다. 지난해 노량진의 고시원과 고시텔이 줄었다는 것은 숫자에 불과할 뿐 공급 원룸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D 공인중개사는 언론이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데 노량진을 이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노량진이 더욱 어려워지고, 다른 고시촌인 신림동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인근 상인들이 집단적으로 언론사에 항의할 예정임을 밝히기도 했다.

 

고시촌의 분주한 뒷골목. 대부분 허름하지만 인근에 대형 오피스텔이 들어서며 고급화, 최신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백종국기자

 

노량진 일대 고급고시촌으로 변모 중

취재 결과, 노량진 고시촌은 침체되기보다는 변모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해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사시 준비생들의 요람이었던 신림동이 새로운 고객잡기에 나선 것과 관련이 없지 않다. 신림동은 노량진보다 싼 물가를 무기로 경제력이 달리는 공시생들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노량진 고시촌 상인들은 라이벌인 신림동 고시촌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사시 폐지에도 불구하고 고시촌 공실을 채워가고 있는 관악구와 신림동의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신림동 고시촌 공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일부는 조선족 동포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은 조선족 동포가 없이는 경제가 안 돌아가는 상황으로, 신림동 고시촌이 중국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취재를 정리해보면 노량진은 부유한 공시생들의 고시촌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불편함만이 아니라 위험함으로 인해 예전의 쪽방 같은 고시원은 줄고 값비싼 최신식 원룸에 대한 선호가 늘고 있다. 부유한 부모가 있는 공시생들에게는 무리한 선택이 아니며 충분한 대기 수요가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노량진에 여전히 신축원룸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노량진의 이런 고급화진행 과정에서 경제력의 한계에 부딪힌 노량진 공시생들의 일부가 신림동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노량진 고시촌 공시생들의 신림동 이전이 꼭 노량진 고시촌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공무원 되기 열풍이 계속 되는 한, 노량진의 지리적 유리함을 활용하는 공시생이 있는 한, 실강(실제 강의)의 위력을 알고 인강의 한계를 깨닫는 공시생이 존재하는 한 노량진 고시촌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향후 노량진 고시촌과 신림동 고시촌의 변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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