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것 찾는 사람들에 어울리는 '을지로'
젊음의 거리 홍대와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을지로의 오래된 건물, 좁은 골목 곳곳에 간판 없는 가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모르면 간첩이라 불리는 을지로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지저분한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을지로의 건물들

최근 SNS에서 핫하게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힙스터들의 성지라 불리는 '을지로'다.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을지로3가역은 낮부터 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방문자로 북적거린다.

을지로는 원래 옛날부터 소규모 제조업 공장과 크고 작은 철물점, 인쇄소가 밀집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골목에는 두툼한 종이를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소상공인들이 열심히 살아온 지역이었지만 상권이 잘 갖춰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골뱅이 골목'과 '노가리 골목', '을지면옥'과 같은 유명한 노포 식당만 있었을 뿐이다. 하루 일과가 끝난 직장인들이 들러 간단하게 술 한잔 걸치고 가는 그런 동네였다.

그러는 중 을지로의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빈 가게들이 생겨났고, 20~30대 청년들이 나타났다. 낮은 권리금과 저렴한 월세를 찾던 청년예술가들이 을지로에 모여 작업실 겸 개성 넘치는 가게를 문 열기 시작한 것.

그렇게 시작된 ‘힙지로'는 철저하게 입소문과 SNS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판 없는 가게로, 찾기 어려운 골목에 위치한 개성 넘치는 가게들로 젊은이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중장년층의 직장인으로 가득했던 을지로는 이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철판구이 레스토랑은 인쇄소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고 있다
을지로의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면 숨어 있는 가게들이 나온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 힘든 골목에 위치한 카페

을지로는 복잡하다. 골목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고 건물마다 서로 폭이 좁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70년대에 지었을 법한 오래된 건물에는 조잡한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세무사 사무소, 인쇄소, 법률사무소, 사우나, 다방 등의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 이미 주인이 사라진 간판들이다.

이런 건물에 와인바가 숨어 있다면 누군들 믿을까. 낮에는 평범하지만 밤이 되면 붉은 조명이 새어 나오는 창문이 있다. 감성적인 와인바 '을지로맨틱'이다. 호기심에 방문하거나 SNS를 보고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바와 카페,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가게 '녁' 역시 간판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작은 간판을 세워둔 '카페 잔'. 간판이 있음에도 입구를 두 세 번은 왔다 갔다 하면서 두리번거릴 만큼 발견하기 어렵다. 레트로 감성이 넘치는 이곳은 주문한 음료를 본인이 선택한 커피잔에 제공한다.

간판을 크게 내걸어도 알아보기 힘든 카페 '호텔수선화'와 한약방 콘셉트의 카페 '커피한약방'은 또 어떤지. 특히 커피한약방은 사람 하나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에 입구가 있다. 골목 사이로 뭉근히 퍼져나가는 로스팅 냄새 덕에 이곳에 카페가 있음을 예상케 한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빈 곳에 들어선 카페와 식당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중 경성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호랑이커피'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근처에 분식집, 펍, 소품 숍등도 함께 하고 있다. 

이처럼 을지로의 가게들은 골목에 숨어 있거나 건물 윗층에 간판도 없이 자리를 잡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고 가도 골목과 건물 사이에서 언제나 헤매기 일수다. 간판이 있어도 작거나 거의 보이지 않으니, 찾아가기 어렵다. 이게 바로 을지로의 매력이 아닐까.

을지로 일대를 걸으며 우연히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유명한 노포 식당 주위를 잘 살피면 감성적인 카페와 선술집을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에 들러본 가게가 인생 맛집이 될지 누가 알까. 하나둘씩 늘어가는 을지로의 힙한 가게들 덕분에 매일매일 을지로는 핫하다. 이 정도면 을지로 탐험이라 해도 되겠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세운상가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
작은 카페 안에 손님들이 앉아서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대림상가에서 작은 소품을 파는 편집숍

복고에 이어 레트로 유행이 다시 찾아온 만큼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욕구는 끊이질 않는다. 그러한 유행에 을지로는 딱 알맞은 지역이다. 젊음의 거리 홍대와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분명 다른 매력이 있다.

낡은 건물 안에 현대적인 감성의 가게들은 분명 새롭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졌기에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골목을 누비고, 독특한 분위기의 와인바를 찾아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철문을 연다. SNS 때문에 가능해진 문화가 아닐까 싶다.

기존에 사람이 북적대던 노가리 골목에도 젊은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다. 이제 을지로를 방문하는 연령층은 다양해졌고, 그 덕에 죽어가던 상권은 떠오르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지금도 을지로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전깃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귀여운 간판
세무사 간판 아래에 와인바가 숨어 있다
끊임없이 커피를 내리는 을지로의 핫한 카페 바리스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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