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논설위원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지난 2월 대법원은 육체노동자의 일할 수 있는 나이, 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한 판결을 내렸다정부에서는 현행 65세인 노인 복지제도의 기준연령을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현재 만 65세인 노인연령 기준을 만 70세로 높이는 데 찬성하는 국민이 55.9%로 반대(41%) 의견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순 다섯 나이에도 근육을 쓰는 육체노동이 여의할까. 노인 기준연령의 상향 조정은 시대의 대세인가. 

황동규 시인의 이사라는 시가 떠오른다. 시인은 예순 두 살 먹은 사람을 노인이라고 부른다. “이삿짐 센터의 62세 노인./ 술  없이는 힘 못 쓰는/ 그러나 아직 고운 얼굴./ (내 그 나이에 그만큼 깨끗할까?)/  피아노 밑에 혼자 들어가/ 힘을 쓴다./ 아 힘이 보인다./ 힘이 일어선다.”

노인은 힘이 센가. 62세라면 사실 노인이라기보다는 예비노인이다. 환갑을 갓 넘겼어도 물론 노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일흔은 돼야 노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노인연령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다.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14.7%(지난해 11월말 기준)에 달해 이미 고령사회가 됐다. 2026년에는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노인연령을 상향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노인연령 상향의 기대효과는 상당하다. 노인연령 기준을 70세로 높이면 2040년 기준 생산가능인구는 424만명(8.4%포인트) 증가한다. 또 노인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는 59.2명에서 38.9명으로 줄어든다.  미래세대로서는 부양부담과 재정부담을 적잖이 덜 수 있는 것이다.

노인복지법상 각종 복지제도에서 노인으로 간주되는 연령은 만 65세다. 노인복지 수혜자 입장에서는 기준이 상향될 경우 사회안전망의 기본 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만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저부담·저복지 구조인 우리 사회안전망은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오히려 지속적으로 확충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인연령 상향은 청년, 일자리, 세대갈등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려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사회적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다.

노인 연령을 70세로 일괄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은 무리다.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릴 빈곤 노인층에 대한 지원 등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2.5%3.7배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2012년까지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해 큰 부작용 없이 진행되고 있는 사례를 참조해야 한다는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국가재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가파른 현실을 감안하면 노인연령 조정은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대법원이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1989년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지 30년 만의 일이다. 자신이 속한 세대를 돌아보고 시대의 변화를 생각해 보게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65세 만큼 풍성한 얘깃거리를 담고 있는 인간의 나이도 없을 듯하다. ‘한국 나이로 쳐 65세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첫 주자다. 생산가능연령을 졸업하게 되는 슬픈나이다. 1년이 지나 만 65세가 되면 법적노인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젊은노인이다. 장년을 넘어 노년의 지경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강하다.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이 왕성하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는 ‘2019 세계 10대 소비 트렌드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을 나이를 인지할 수 없는 세대(Age-agnostic)’라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삶을 즐기려는 성향이 Z세대(1995년 이후 출생)보다 강하고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와 비슷하다.

고령화시대를 사는 우리는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노인 관련 용어부터 경계가 모호하다. 시니어(Senior)’실버(Silver)’는 흔히 혼용되지만 그 개념과 특성은 사뭇 다르다. 특히 시니어라는 말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연장자라는 뜻을 지닌 시니어는 일반적으로 4050세 이상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반면 실버는 통상적으로 65세 이상의 노인층을 일컫는다.

실버와 달리 시니어의 범주는 넓다. 65세 이상을 올드 시니어(Old Senior, 고령자)’, 50세 이상 65세 미만을 뉴 시니어(New Senior, 준 고령자)’, 50세 미만자는 프리 시니어(Pre Senior, 예비 고령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요컨대 시니어는 고령자뿐 아니라 다가올 고령의 시기를 준비하는 세대를 아우르는 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인 것이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화두다. 우리는 지금 고령화 시대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가 낯설기만 하다. 노인복지 문제는 물질적·경제적 관점 못지않게 정신적·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니어 혹은 실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심상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나이 듦의 미덕이라고 할까. 이제 우리는 나이 든 자로서 하루하루를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물질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힘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이제 나는 마치 기다릴 시간이 있기라도 한 듯이 예전보다 훨씬 덜 초조하다. 전에 나는 센 불로 내 삶을 태웠다. 이제는 은근한 불에 뭉근하게 익도록 내버려둔다. 훨씬 느리지만 한결 낫다” ‘부자뱅이 가난뱅이’, ‘나의 아빠 닥터 푸르니에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장 루이 푸르니에가 자신의 또 다른 저작 나의 마지막 남은 검은 머리카락 하나에 적어 놓은 말이다. 늙바탕에 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늙음에 대한 성찰이 서늘한 감동을 안겨 준다.

인생을 웬만큼 살았으면 센 불의 조급함보다는 은근한 불의 느긋함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인내심은 소진되고 포용력은 증발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인간군상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본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를 자임하고, ‘인생 리셋을 다짐하고, ‘실버세대 찬가를 목청껏 불러도 정신의 자유로움이 없으면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 대신 굳이 어르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노인이 나쁜 말인가. 노인이라는 말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노인 기준연령이 상향되는 것은 옳지 않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숙의의 기간, 숙성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로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심리적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