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4명 ‘헌법불합치’·3명 ‘단순위헌’·2명 ‘합헌’

"여성의 자기결정권 과도하게 침해"…“고통 강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장에서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기 위한 재판이 열렸다. 낙태죄는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사진 헌법재판소 제공.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낙태죄의 운명이 바뀌었다헌법재판소(헌재)11일 낙태죄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날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2691(자기낙태죄)2701(동의낙태죄)에 대해 낸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 3(단순위헌), 2(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1953년 형법에 낙태죄 조항을 도입해 범죄로 규정한 지 66,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이다.

형법 2691항은 자기낙태죄로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2701항은 동의낙태죄로 의사, 한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승낙이 없을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202012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현재의 법은 개정 이전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효력을 상실하면 법적 공백으로 사회적 혼란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법이 개정될 때까지 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국회가 헌재가 주문한 내년 말까지 낙태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죄는 위헌으로 효력을 상실한다.

이번 헌재 결정의 쟁점은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3개월(1~12) 이내 낙태를 허용할지 여부였다.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12주 이내 중절 수술을 금하는 것은 임신·출산 여부와 그 시기를 결정할 자유를 제한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낙태죄 존치론자들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 낙태를 이미 허용하고 있는 만큼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은 아니라고 말한다. 

헙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7명의 재판관은 낙태 처벌 조항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임신·출산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데 해당 조항은 임신기간 여하에 상관없이 모든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 같은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관들은 모자보건법에서 일부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여성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게 7명 재판관의 공통된 견해였다.

2012년 낙태죄에 대한 헌재 결정은 44 의견으로 합헌이었다. 위헌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했다. 헌재는 당시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사익, 태아의 생명권은 공익으로 규정하며 낙태죄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합헙의견을 낸 재판관은 인간의 존엄과 태아의 생명 중시를 논거로 들었다.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태아의 생명권이냐, 임신·출산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은 1953년 관련 법이 제정된 이래 되풀이돼 온 해묵은 것이다. 여성계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낙태죄는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폐지를 촉구해 왔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와 종교계 등 낙태죄 존치를 요구하는 쪽은 태아의 독자적인 생명권을 앞세워 왔다.

특히 천주교 측은 이날 헌재의 결정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김희중 대주교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낙태죄는 이제 조종(弔鐘)을 고하게 됐지만 생명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사후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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