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이해타산에 법안 처리 지연…기업경영 ‘먹구름’

민주노총, 투쟁일변도 벗어나 대화로 노동현안 풀어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타협 부재와 민주노총 등 노동계 일각의 극심한 반대로 국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법안 처리가 미뤄짐에 따라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르노 삼성 부산공장 생산라인. 사진 르노삼성.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 입장 차가 워낙 큰 데다 노동계의 반발 또한 극심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3일 고용노동소위를 열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3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오늘(5) 처리는 물 건너갔다. 현재로선 여야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4월 임시국회 처리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단위기간 최장 3개월 이내에서 평균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주 52시간제 전면 실시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영계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요구가 끊이지 않자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노사정이 중지를 모은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완강한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와 정치권이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법 개악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어제(4) 대의원대회에서 그동안 결론을 내지 못한 경사노위 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의안 상정조차 하지 않아 사회적 대화 자체를 원천 봉쇄했다. 그 대신 분기별 파업을 예고하는 등 강경 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 말 기준 조합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 한국노총에 버금가는 규모다. 하지만 1999년 노사정위원회 탈퇴 후 20년째 사회적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거대 노동 주체로서 과연 온당한 태도인가. 민주노총 조합원 500여 명은 그제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저지를 위해 국회 담장을 부수고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등 폭력시위를 벌였다. 민주노총의 시계는 몇 시인가. 지금은 더 이상 대안도 없이 물리력을 동원한 투쟁 일변도의 과격 노동운동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를 끝내 거부하고 있다. 노동계가 그토록 반대하는 탄력근로제를 경사노위에 상정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대화마저 거부하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고통분담은커녕 기득권 지키기로 비치기 십상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역효과를 줄이기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는 있어야 한다.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이라도 빨리 통과시키는 것이 그나마 산업생산성 저하를 막고 기업 경영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탄력근로제가 더 많은 노동자를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52시간 근로제를 교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반드시 개인의 삶의 질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혜자가 돼야 할 근로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안겨줄 수도 있다. ‘노동착취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발적 노동의 가치를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된다.

탄력근로제 확대의 당위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분야별 혹은 현업의 특성상 일하는 시간대가 다르고 휴일 근로가 불가피한 경우도 많다. 예컨대 정보기술(IT)과 바이오, 게임 등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업종의 경우 주 52시간 근로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꼼수 재택근무가 현실이 됐다. 52시간 근로 원칙에 묶여 업무의 특성 등 현실을 외면하면 비효율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탄력근로제는 이 같은 혼란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노동계 일각의 노동시간 개악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노총은 장외 실력행사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하루 빨리 사회적 대화 테이블로 복귀하기 바란다.

현재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어렵게 도출한 결과다. 그런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경사노위 합의안대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유한국당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에 따른 기업 부담 증가를 이유로 이를 1년까지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현행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안은 경사노위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조율해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안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존중돼야 한다. 한국당이 이제 와서 기업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1년 연장안을 들고 나와 법 개정에 제동을 거는 것은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지난 3월 말로 주 52시간 근로제 계도기간도 끝나 당장 근로시간 단축에 나서야하는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 근로제 계도기간이 끝났지만 법이 보완될 때까지 처벌을 유예, 5월부터 사업장 점검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달 말까지 법안을 처리해도 절차적으로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탄력근로 확대가 미뤄질수록 산업계의 어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서둘러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계속 지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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