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자,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사과모드’로 버티기

청문 결과 외면 대통령이 임명 강행 땐 ‘속수무책’

 
김종면 논설위원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문화인류학 개념 중에 입사식(入社式)이라는 것이 있다. 미개 사회에서 일정한 나이에 달한 청년에게 씨족이나 종교단체 등의 구성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주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다.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뒤따른다. 이 혹독한 의례를 통과해야 비로소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통과의례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상징적인 용어를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쉽게 사용한다. 어제(27) 끝난 장관 후보자 7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두고도 통과의례라는 말을 한다. 요식행위라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등 문재인 정부 스스로 정한 인사검증 기준에 크게 미달하는 후보가 태반이다. 자유한국당은 28일 이들에 대해 모두 부적격이라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은 또 의연히 장관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

통과의례는 어쩌면 통과를 시키지 않는 데 의의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 대상인 장관 후보자들에게 국회 인사청문회는 통과를 위한 통과 의례로 굳어져버린 모양새다. 취임하기 전에 거쳐야 할 형식적인 절차쯤으로 보인다.   

2000년 제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돼 이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실질적인 성과도 거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장상·장대환 두 명의 국무총리 서리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사소한흠결로 끝내 서리딱지를 떼지 못했다. 이는 물론 청문회 외에 국회 표결을 거쳐야 하는 총리의 경우지만 장관에 대한 기준도 엄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거의 예외 없이 낙마했다. 그만큼 인사 기준이 까다로웠고 청문회의 취지도 존중받는 분위기였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 기준을 나름대로 엄격하게 세웠다. 문제는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사청문회 결과도 묵살되기 일쑤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재테크 투기에다 꼼수 증여까지 드러났다. 그런 사람이 주택정책 총괄 부처의 수장이 되려한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자기 지역구에서 재개발 딱지투자로 16억 원의 차익을 냈다고 한다.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행위는 물론 국민 정서상 송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단호히 부적격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요즘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장관 후보자들은 이전과 달리 하나 같이 죄송·사과 모드.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반성’‘송구라는 표현을 스무 차례도 넘게 썼다. 언제부턴가 해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잘못만 인정하면 용서가 되는 기이한 풍토가 생겼다. 공직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위험한 것도 없다. 인사청문회는 고해성사의 장이 아니다. 최소한 후보자의 잘못에 대한 사후 조치와 개선 약속이라도 분명히 받아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데는 청문위원으로 나선 여야 의원들의 책임도 크다. 장관 후보자의 자질이나 정책 역량 검증은 뒷전이다. 한쪽은 감싸기에 급급하고 다른 쪽은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 표를 의식한 과장된 언동으로 청문회 스타를 꿈꾸는 원맨쇼 의원도 적지 않다. 그러니 어떻게 청문회의 내실을 기할 수 있겠는가.

인사청문회에 대한 정치적 냉소가 임계점을 넘었다. 많은 이들이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아해 한다.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에 대한 중대한 흠결이 드러나도 대통령이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그동안 부적격자 임명 철회를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했지만 강행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묻지마 임명'이  능사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 만큼 업무에서 아주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청문회 때 제기된 여러 염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임 장관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말이라고 해도 인사청문회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으로서는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인사청문회가 정파적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상 국민의 온전한 신뢰를 받기는 어렵다.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마당이 되고,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제도 자체의 존폐 문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청문보고서가 반드시 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청문 결과는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옳다. 누가 봐도 명백한 흠이 있는 인사를 고위 공직에 앉히는 것은 권력의 오만이다. 민심 이반은 불공정한 인사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잊지 말아야 한다.

옥과 돌은 종종 한데 섞여 있다. 옥석혼효(玉石混淆)의 실상을 똑바로 봐야 한다. 옥이 아닌 돌을 골라내는 것이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다. 인사청문회를 아예 없앨 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그 역할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출범 초기만 해도 참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 인사에 더 이상 감동은 없다. 인사소외 문제가 심각하다. 인재를 널리 구하지 않는다. 탕평의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인사 난맥의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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