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서 제1회 추모가요제
푸근한 서정... 트로트의 맛과 멋 만끽

김종면 논설위원.

[시사경제신문 김종면 기자] “피아노 앞에서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음악을 보고 머릿속으로 그것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 엔피알(NPR)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음악은 듣고 그림은 보는 것인데 그는 어떻게 음악을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바로 창조적 상상력의 비밀이 있다.

고급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예술가에게 상상력은 생명과도 같다.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도구가 감정이입이다. 중국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소동파가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대나무가 내 속에서 자라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이 대중가요를 잘 부르기 위해서도 감정이입은 필수다. 대중가요 중에서도 특히 구성지고 애상적인 성격의 트로트를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노래 속에 들어가 노랫말과 하나가 돼야 비로소 그 곡의 정조(情調)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시중에서 흔히 얘기하는 ‘뽕필’과는 다르다. ‘유사 트로트’라고 할까 ‘사이비 트로트’라고 할까 ‘트로트 아닌 트로트’가 판친다.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트로트 고유의 은근한 서정마저 찾아볼 수 없다면 그게 무슨 트로트인가.

트로트가 무엇인지 알고 트로트를 트로트답게 부르는 가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나훈아가 있고 남진이 있다. 이미자가 있는가 하면 조미미가 있다. 세 사람은 여전히 현역이지만 한 사람은 2012년 고인이 됐다. 지난 8일에는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제1회 ‘조미미 추모가요제’가 열려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조미미를 기리는 추모가요제가 제주에서 첫 출발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60∼70년대 트로트 황금시대 주역 가운데 한 명인 그의 히트곡 ‘서귀포를 아시나요’가 발표된 1970년대 초만 해도 제주도는 큰맘 먹고 가야하던 낭만과 동경의 땅이었다. 이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밀감 향기에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쁜 비바리, 그림 같은 수평선에 돛단배,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라산 망아지 떼, 줄기줄기 폭포마다 무지개가 한데 어우러져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제주도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다. 서귀포 칠십리 시공원에는 이 곡의 노래비가 들어서 있다.

조미미는 ‘서귀포를 아시나요’ 외에도 ‘바다가 육지라면’,‘서산 갯마을’,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여자의 꿈’, ‘선생님’, ‘동창생’, ‘내가 미워요’, ‘진천아가씨’ 등 히트곡이 적지 않다. 그의 노래에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아닌 부드럽고 기름진 목소리가 빚어내는 풍부한 감성이 녹아 있다. 그는 누구보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불렀다.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다.   남의 노래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해석해 그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가수는 흔치 않다. ‘눈물의 연평도’의 오리지널 가수는 최숙자인데 조미미의 노래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가수 나훈아는 우리 정서를 대표하는 전통가요를 트로트나 ‘뽕짝’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며 자신은 ‘아리랑 가수’, ‘아리랑 소리꾼’이라고 부른다. 전통가요에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통속’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트로트라고 부르든 전통가요라고 하든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대중가요의 한 형식이라는 점이다. 대중가요는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저 한때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노래가 아니다. 대중가요는 힘이 세다. 조미미는 이미 고인이 돼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남아 심금을 울리고 있다.
 
우리 대중가요사를 살펴보면 1970년대는 트로트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트로트는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 트로트 가수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KBS의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 정도가 고작이다. 활동무대 자체가 없다시피 한 것이다. 조미미 추모가요제는 위축된 트로트의 발전을 위해서도 더욱 내실 있게 가꿔나가야 한다. 그것은 한 가수에 대한 추모를 넘어 우리 대중문화의 토양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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