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ㆍ형사상 이의하지 않겠다’고 작성한 합의서의 효력

임다영 변호사 (법무법인 이헌).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경찰서에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이 다치거나, 믿었던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변제 받지 못한 경우가 그렇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사상해서 입건되거나, 사기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한 경우에 가해자들이 선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합의’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면서 합의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합의서에는 보통 ‘민, 형사상 이의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간다. 이 문구, 쉽게 써도 괜찮을까?

정씨는 백화점 상가를 분양 받는 용도에 필요하다는 김씨의 말에 속아, 김씨에게 5,500만 원을 빌려줬다. 김씨가 돈을 갚지 않자 정씨는 김씨를 사기죄로 고소했고, 김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김씨는 정씨에게, 당장 5,500만 원을 갚을 수는 없으니 우선 일부를 받고 합의해주면 출소 후 나머지를 갚겠다며 간곡히 부탁했다. 이에 정씨는 1,300만원을 받고 합의서를 작성해줬다. 김씨는 정씨가 작성한 합의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 감형을 받았다.

정씨가 작성한 합의서에는 ‘고소인은 피고소인과 채권에 대한 채무변제를 완료, 원만한 합의를 도출했으므로 고소를 전부 취소하며 추후 민ㆍ형사상의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 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씨가 출소 후에도 나머지 돈을 갚지 않자, 정씨는 김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 무심코 적었던 ‘민ㆍ형사상의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라는 문구가 발목을 잡았다.

대법원은 정씨가 형사상 합의만 한 것이고 민사상으로는 채무 전액을 변제 받고자 했다면 그러한 취지를 합의서에 기재해 두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명시적으로 ‘민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기재하고, 합의서 작성 전에 김씨가 출소 후 전액 변제를 약속했는데도 1,300만 원만을 지급받은 후 위와 같은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김씨의 약속이 합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부제소 합의를 인정했고, 정씨는 결국 패소하게 된 것이다(대법원 2014. 4. 24. 선고 2013다97786 판결 참조).

무심코 적은 합의서로 인해 채무 전액을 변제 받지 못하거나 피해 전체를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합의서 작성 시 이점을 심도 있게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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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영 변호사(법무법인 이헌)

-변호사 / 변리사
-서울대학교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사
-현 법무법인 이헌 변호사
-현 대한변호사협회 준법지원인특별위원회 위원
-현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
-현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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