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술총연합회 상임고문·대한유술협회 총재

한국전통무예의 원로 인사 중 한명인 대한유술협회 장만철 총재

 

한국전통무예의 원로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기록경기 운영위원장

오늘 날 무예는 격투 스포츠 종목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태권도, 복싱, 유도, 레슬링 등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무예의 한 종류들은 산업 활성화에 따라 국민생활체육으로도 널리 보급됐다. 하지만 비단 경기만으로 무예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룬 태권도의 경우 국가대표 시범단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다. 무예의 저변 확대와 진흥에 있어 시연, 시범은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시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격파는 무예의 파괴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차력이 79~80년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누렸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쇠파이프를 맨 손으로 구부리고 두꺼운 무쇠 솥을 두 동강 내는 모습들은 공중파 방송에서 고정 프로그램이 진행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약장수와 결탁한 사기범죄에 연루되기도 하면서 사회적 공분을 사기도 했던 것이 차력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같은 차력쇼는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 시절 화려하게 차력으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들은 아직 무인으로서 무예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명이 바로 대한유술협회 장만철 총재다. 국내 전통무예진흥 발전을 위해 사회 곳곳에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장만철 총재를 직접 만나 무인으로서의 지난날을 되짚어 봤다.

 

어려서부터 무예 동경
기공술 익히며 차력인으로 유명세

장 총재는 현재 대한유술협회를 직접 설립해 총재로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한국무술총연합회 상임고문과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기록경기 운영위원장을 역임 중이다. 사실상 한국전통무예계에서는 원로급 인사로 통하며, 대중들에게는 과거 차력인으로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장 총재가 처음 무예와 연을 닿게 된 계기는 싸움 때문이다. 남자라면 어렸을 적 한 번씩은 경험했을 아이들의 싸움이다. 과거에는 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몸이 약했던 4살 위 친형님이 당시 친구로 지내던 2살 위 동네 형에게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제압한 것이 계기가 됐다.

1살의 차이가 큰 어린 시절에 겪은 이 같은 경험은 장 총재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이후 본격적으로는 중학교 1학년 시절 경찰서 옆 유도관에서 친구와 함께 유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고, 집이 유복해지면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입성하자 운동을 지속하기에도 좋은 환경이 갖추어졌다.

특히 차력과 연을 닿게 된 계기는 부산에서였다. 군 제대 후 부산에서 만난 지인에게 장 총재는 밥을 사주게 된다. 자장면 7그릇과 계란 2판을 깨 날달걀을 후루룩 마신 지인은 보답으로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못을 들어 구부렸다 펴고를 반복하다 두 동강을 냈다. 이거다 싶었던 장 총재는 3년을 따라다니며 조른 끝에 가르침을 받게 된다. 이것이 차력과의 만남이다.

차력의 기초는 기공이다. 장 총재는 기공무술을 접하면서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차력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차력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1978년 당시 TBC 프로그램인 ‘TV 나의 비밀은?’을 시작으로 1979년 MBC 묘기대행진에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가장 최근에는 2004년 당시 방영됐던 SBS 일요일이 좋다, 유재석과 감개무량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유재석과 패널들이 무예에 도전하던 내용이다.

장만철 총재의 과거 방송 및 영화 출연 모습

“유술은 고려 중기에 보급”
대부분의 무술이 유술에서 발전

장 총재가 대한유술협회를 설립한 시점은 1975년이다. 하지만 1991년에서야 사회단체로 등록하며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시점은 2003년으로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공식적인 단체로 인정받았다. 유술은 오늘 날 일본의 전통무예로 소개되고 있으며, 이종격투기로 유명해진 주짓수가 유술의 한 종류였던 유도를 기반으로 그라운드 기술을 특화시켜 브라질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장 총재는 유술이 고려 시대 우리의 전통무예라고 소개했다. 장 총재가 처음 유술을 접했던 것은 차력을 위해 기공술을 익히고 꽤 익숙해진 이후 우연하게 접한 책 한권 때문이다. 유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던 책자에서 장 총재는 현재 본인이 연마하고 있는 무술이 유술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무술의 종류 중 월등하게 앞서 시작된 무술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현재 대부분의 무술이 유술에서 떨어져 나와 발전됐다는 것이다.

이에 장 총재는 책자에서 소개되고 있었던 25가지의 기법을 대부분 익히게 됐고, 본격적으로 유술을 직접 전파하기에 이르면서 대한유술협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특히 유술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달리 한국전통무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장 총재는 “유술은 고려 중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군인들이 무기가 없을 때도 싸울 수 있도록 방법을 기술한 국방무술”이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가라데와 유도로 변형됐고, 우리나라의 태권도나 택견, 수박 등도 시대에 따라 변형된 유술의 한 종류”라고 강조했다.

또 장 총재는 “현재 각 무술의 고단자들이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유술은 한국의 전통무예이고 대부분의 무술이 유술을 기반으로 시대에 따라 변형되어 왔다는 점”이라며 “오늘 날 유술은 호신술, 지압, 교정, 체조, 마상무술, 유도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장만철 총재와 호국무술연맹 박상현 사무총장

“유술은 대중화에 실패
스포츠로 발전시켜 진흥해야“

하지만 장 총재는 유술이 대중화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유술을 익혀 무예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무엇인가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도장을 열더라도 태권도나 합기도 등 유명 무술들에 밀려 운영이 어려워진다. 이제는 태권도 도장이나 합기도 도장에서 곁들여 가르치는 무술로 전락한 상태다.

이 때문에 장 총재는 올림픽 종목으로 무술이 발전하거나 이종격투기와 같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발전하는 현재 무술의 트렌드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예를 스포츠로 전향시켜 나간 것에 대해 고맙다는 표현까지 사용할 정도다.

장 총재는 “앞으로도 한국전통무예가 스포츠로 전향되어 대중들이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많은 무인들이 저마다 우리가 최고라고 하지만 숨겨두고 있으면 사람들이 알 수 없고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대중화에 뛰어들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한국전통무예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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