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홍콩 액션 영화계 주연급 배우
국내에서는 무술 드라마 연출하기도
이제는 액션 배우 후배 양성에 몰두

 

과거에는 무인들이 주로 전시에 두각을 나타냈다면 오늘날 무인들은 스포츠 경기와 영화·공연 등 주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과거 무술을 접목한 액션영화의 붐은 이소룡, 성룡, 이연걸과 같은 희대의 스타를 만들었고, 세계적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무술영화는 70~80년대를 전성기로 꼽고 있다. 당시에는 홍콩이 무술영화를 양산하는 메카였으며, 수많은 무인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하기 위해 홍콩에 모여들었다. 이 때 우리나라의 많은 무인들이 홍콩영화에 출연했으며, 나름의 인지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왕년의 액션 스타 ‘왕호’ 역시 70년대 홍콩 무술영화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한 인기 액션배우였다. 수많은 액션 스타들이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던 것을 발판으로 영화에 데뷔했듯 왕호 역시 무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홍콩 액션계의 눈에 들어 데뷔하게 됐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 등 무예를 기반으로 한 액션 영화 장르는 이제 유행에서 뒤쳐진 상황이다. 지금은 CG를 기반으로 한 보다 큰 스케일의 영화들이 인기다. 그렇다면 왕년의 액션 스타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것일까? 왕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려했던 시절’
홍콩 액션 영화의 주연배우

왕호는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한껏 감흥에 젖었다. 그가 액션 배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당시 왕호는 군복무를 해병대 태권도 선수단에서 지냈다. 부대에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연마했다.

해병대 대표였던 그는 제1회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 시범단으로 활약했고, 이 같은 활약 모습은 주요 공중파 뉴스를 장식하며 이름을 알렸다. 무술 영화에 연이 닿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 때다. 1975년 제대한 왕호는 홍콩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아래는 홍금보 감독, 왕호 주연의 투워리어스(1978) 트레일러 영상

당시 왕호에게 러브콜을 보낸 곳은 홍콩의 영화 제작사인  오렌지 스카이 골든 하베스트다. 우리나라에서는 골든 하베스트로 유명하며, 이소룡, 성룡, 홍금보, 원표 등의 액션 스타를 발굴한 곳이다. 당시 홍콩 액션 영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제작사가 바로 골든 하베스트다.

왕호는 홍콩 액션 영화감독인 황풍과 함께 영화적인 무술 액션 장면을 조율하고 1975년에 황풍 감독의 사대문파를 촬영하며 데뷔하게 됐다. 이후 홍금보의 첫 영화감독 데뷔작의 주연, 짠선생과 조준하에서 주연, 천하제일검의 주연 등으로 활약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시절 왕호는 영화 촬영을 위해 다양한 무예를 섭렵하기도 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왕호는 “한국 태권도를 시작으로 기계체조, 영화 촬영을 위한 낙법, 합기도에 영춘권까지 두루 섭렵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홍콩 뿐 아니라 대만과 인도 등을 오가는 로케 촬영도 부지기수였다.

 

▲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왕호는 아직도 쩌렁쩌렁한 무인으로서의 기백을 풍겼다.

 

‘풍부한 영화 경험’
액션 배우 후배 양성에 나서…

홍콩에서 돌아온 왕호는 1982년 KBS 2TV에서 한국 최초 무술 드라마인 ‘비객’을 연출하면서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태권도를 중심으로 한 액션 드라마 ‘비객’은 큰 인기를 모았고, 이를 발판으로 왕호는 방송국과 주간 드라마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사고들이 발목을 잡았다.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따라하는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수사반장, 암행어사 등의 수사물, 액션 장르의 드라마가 모두 종영하게 된 계기가 됐고, 액션 드라마의 연출가로서 활동하려던 왕호의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이에 왕호는 본인의 영화 경험을 살려 액션 배우를 키워내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무인들이 액션 배우로서 영화에 진출하는 등의 일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는 무예를 풍부하게 익혔더라도 영화 연출상에서 필요한 몸짓은 전혀 달라 풍부한 경험을 전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무술 감독들이 영화연출로 데뷔해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 원래 영화를 전공했던 감독들 보다 무예를 기본 바탕으로 한 무술감독의 연출이 더 화려하고 인기를 끌었던 탓이다. 왕호 역시 이 같은 홍콩 영화계에서 확인된 사실을 국내에 접목하고자 했다.

왕호는 “도장에서 배우는 무예와 카메라에 담겨야 하는 무예는 전혀 다르다”며 “무술은 맞지 않고 때리는 동작을 기본으로 하는데, 영화는 맞지 않더라도 맞은 척을 해야 하고 때리지 않았더라도 강하게 때린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전혀 다른 분야”라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정영수 대기자, 왕호 감독, 호국무술연맹 박상현 사무총장.

 

이제는 무인으로…
“전통 무예 진흥에 구심점 필요”

이에 따라 왕호는 천지무예도를 창시했다. 천지무예도는 명상법과 호흡법 등을 중심으로 실전무술과 종합무술을 결합해 영화 연출상 액션배우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무술이다. 이른 바 웰빙무술이라는 명칭도 붙였다. 영화 연기에 필요한 일상에서의 무예를 담아내는 것이 바로 천지무예도다.

여기에 더해 왕호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으며, 액션 배우를 보다 전문적으로 양산하기 위해 한민대학교에서는 액션영화학과 학과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제 왕년의 액션 스타 왕호라는 호칭 보다는 무인들의 예술계 진출을 돕는 무인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통 무예 계통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통 무예 진흥을 위해서는 무인들이 자체적으로 이론과 실기를 접목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해당 무술에 대한 대외적인 학술적 근거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술적 정립을 통해서만 한국 전통 무예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예를 들어 택견이라면 택견에 대한 이론과 실기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전해 내려오고, 이를 발판으로 택견 진흥이라는 대명제 아래 정부의 지원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하지만 누군가는 또 다른 이론으로 택견을 정립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택견이론을 내세우면서 종파와 계파가 나뉘다보니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이 현재 국내 전통 무예계의 잘못된 문화”라고 꼬집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누군가 계파와 종파 간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하나의 전통성을 따르도록 정립해야 한다”며 “사건사고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무인들이 서로 합심해 구심점을 만들려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 정영수 대기자 / 글: 원금희 · 이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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